<인터뷰>-파주홍랑문화예술협회 내종원 사무국장

입력 : 2021-06-05 16:33:44
수정 : 2021-06-05 16:43:26

파주홍랑문화예술협회 내종원 사무국장

코로나와 문화예술 ‘홍랑과 최경창’의 이야기
개발에 떠밀려 또 다시 산소를 이장해야 하는 상황

파주시대 창간 8주년 특집인터뷰

생활중심과 함께 현장성 및 경제성이 중시되는 지역의 많은 문화예술 가운데 ‘파주홍랑문화예술협회’ 현재의 모습과 앞으로의 계획을 내종원 사무국장과 협회의 주제인 ‘홍랑과 최경창’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파주홍랑문화예술협회 설립 동기는 무엇인가
파주는 한반도의 중심지역이고, 고인돌(지석묘), 왕릉, 파주삼현(묵재 윤관, 방촌 황희, 율곡 이이)과 구봉 송익필, 우계 성혼, 구암 허준 등 선현 및 용미리 고려 마애이불입상, 법원읍 갈곡리 천주교 등 크고 작은 많은 유적과 인물들이 있다. 

그중 고죽 최경창 선비와 기생(여류시인)홍랑을 주제로 예술제를 기획하게 된 동기는 어느 날 노래교실에서 <이호섭 작곡, 최홍호 작사> ‘홍랑’이란 노래를 배우며 파주와 애틋한 사연이 있음을 알게 됐다.

블로그, 카페, 해주최씨 문중을 찾아가 전해오는 구전의 이야기, 홍랑에 관한 문중 책자 등을 보고 알아가던 중 사대부 선비(최경창)와 천민의 기생(홍랑)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애절한 사랑과 함께 순애보를 알리고, 고난한 일이지만 공연예술로 보다 더 두 사람의 절절한 사랑이야기를 승화 시키고자 협회를 구성했다.

■현재 고죽 최경창, 홍랑이 영면해 있는 산소를 곧 이장해야 한다고 들었다
교하 다율동에 묘소가 있는데 파주GTX-A노선 차량 기지창 조성으로 종중에서는 타 지역으로 이장하는 논의가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참으로 애통하고 가슴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약 450년 전에 최경창 선비와 홍랑이 운명하시어 묻힌 곳이 월롱면 영태리 캠프에드워드 미군 공여지다.  

그런데 6.25전쟁이후 북한군의 남침을 억제하기 위해 미군부대 캠프에드워드가 1969년에 주둔하는 관계로 강제로 떠밀려 현 다율리에 모시었는데, 국가정책(GTX기지창)으로 이장 문제에 봉착하게 돼 또 다시 묘지를 이장해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미인박명[美人薄命]이라 하는데 두 사람 사이가 너무 좋으면 신이 갈라놓는다 했던가. 저승에서도 두 사람 사이가 너무 좋아 신이 시기[猜忌]를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고 땅에선 연리지가 돼 세세생생 함께 하실 두 사람을 생각해 본다.


■최경창과 홍랑에 대한 인물을 소개해 달라
고죽 최경창 선비는 조선 명종과 선조시대의 인물로 학문과 문장에 능해 이이· 송익필· 최립 등과 시를 서로 주고받았고. 또한 정철·서익등과 삼청동에서 교류했다. 

또한 당시(唐詩)에 뛰어나 백광훈·이달과 함께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불렸고 문장에도 뛰어나 이이·송익필 등과 함께 팔문장(八文章)가로 일컬어졌다. 

전남 영암 외가에서 태어났으나 청년시절은 파주와 한양을 오가며 학문을 수학했고 선비적 인품과 천부적인 다재다능함으로 주변에 좋은 벗을 많이 두었다. 

홍랑은 함경도 홍원 출생이고 생몰연대는 미상이다. 홍랑은 어머니 손에 자라다 생계가 막막해 궁여지책으로 관아기생으로 입적 하게 됐으리라 추측해본다. 

행동거지[行動擧止] 예의범절 문학적 소양을 봐서 필시 양반집 자손으로서 아버지가 화를 당해 어쩔 수 없이 기생이 되었으리라 추측해본다.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시 홍랑의 ‘묏버들가’.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에게 주무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 곧 나거든 나인가도 여기소서”. 이른 봄  님과 이별하며 아직 추워서 꽃은 없고 순간 개울가의 묏버들을 전하는 재치와 불후의 명시 묏버들가를 지은 방년 18세 홍랑. 이 시는 중·고등 교과서에 나오고 대입 수능 시험에도 자주 출제되는 훌륭한 시(詩)다.

■파주홍랑문화예술협회는 그동안 어떤 활동을 했는가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문화, 언택트 예술, 몇인 이상 단체모임 금지 등 정말 낯 설은 풍경은 우울증을 수반하는 적응하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인류의 조상 호모사피엔스 이후 인류는 많은 진화를 거듭했고, 이런 과정중 이 또한 진화의 일부고, 인력으로 안 되는 것이리라 생각하며 마음을 비우고 있지만 비대면에 관한 그 어떠한 관객 없는 공연은 허공속의 메아리이기에 생각조차 안하고 있다. 

홍랑예술제는 2018년 봄 1회 공연(시민회관 대 공연장 관객 약1,200명), 2019년 가을 2회 공연(시민회관 소 공연장 관객 약 350명) 이후 현재는 코로나가 하루속히 종식돼 3회, 4회, 5회 연속 공연 할 수 있기를 바라며 협회 회원과 관계자 일부 사람과 안부 연락만 주고받고 있다.   

■파주홍랑문화예술협회의 향후 계획을 밝힌다면
△홍랑 공원과 동상 설립 △남과 북에서 순회공연(최경창 전남 영암, 홍랑 함경도 홍원) △연극 및 뮤지컬 공연 △지속적인 홍랑 가요제 진행 등이다.

내종원 파주홍랑문화예술협회 사무국장은 “예술제를 통해 각박한 현대의 인명경시흐름, 인스턴트사랑, 이기적 사고에서 조선시대 자동차, 운동화, 휴대폰도 없었던 순박한 옛날로 돌아가 두 사람의 절절한 영혼의 사랑을 통해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잠시나마 영혼을 정화시키는 그런 시간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대담/정리 김영중 기자 stjun010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