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잠자는 자원을 흔들어 깨운 ‘쇠꼴마을 김교화 촌장’

“아버지는 농업에 길을 찾고, 아들은 농업 옆에 길을 찾았다”

입력 : 2021-01-05 23:32:21
수정 : 2021-01-05 23:35:26

사진/독자 제공

김 촌장 ‘2020 파주를 빛낸 올해의 인물 편’ 선정 
‘쇠꼴마을 이야기’ 파주시 중앙도서관에 전시 중 

“45년 전 자갈밭 군 사격장에 만약 기적을 이루어 놓는다면 더할 나위 없는 관광자원이자,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교육의 장’이 되지 않겠는가? ‘농업에 길이 있다’라는 사명감에 ‘생각을 바꾸면 미래가 보인다’ 라는 목표를 갖고 시작한지 어언 45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습니다. 

반세기 가까운 세월, 이제는 어느 정도 면모를 갖춰 도시민들에게 휴식의 공간, 농민에게는 소득의 공간,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는 교육의 장으로 변해가고 있는 와중에 좀 더 다듬어 진다면 사람이 그리워 한숨짓던 고향 땅이, 먼 훗날 ‘잠자는 자연을 흔들어 깨운 쇠꼴마을’이 돼, 우리 모두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터전과 인간 상록수가 돼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쇠꼴마을을 시작했습니다” 파주시 법원읍 금곡리 관광농원 쇠꼴마을 김교화 촌장(77, 사진)이 농장을 일구게 된 사연이다. 

김 촌장은 6.25 한국전쟁 때 지나는 미군 지프차에 “헬로! 기부 미 초콜릿(Hey! Give me Chocolate)” 하며 쫓아다니다, 미군이 제공해 준 천막에서 공부하던 소년이었다. 이후 그는 서울 덕수상고를 졸업, 29살의 나이에 서울 을지로에서 당시 외삼촌이 운영하고 있던 건축자재 합판 가게에서 급사로 일 하면서 외삼촌의 합판 판매 운영의 노하우를 익혔다. 

어느 날 외삼촌이 부도를 당하자 그동안 눈으로 배우고 익혔던 합판 판매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배우자(안필남 여사)를 만나 결혼도 했으며, 전국 합판 판매상 1위(동서합판)에 올라 어느 정도 부를 축적했다. 

그러나 고향에 남아 불치병을 앓고 있던 여동생이 항상 걱정이 됐다. 여동생 교순은 뇌전증(예전의 간질)을 앓고 있었다. 김 촌장은 여동생 교순이가 항상 걱정이었다.  

김 촌장은 여동생 교순을 위해 소 여섯 마리를 사 주고 생계를 이어가게 했다. 소를 키우고 있던 여동생의 농장에서는 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으나 가끔 일꾼들인 목부들이 속을 썩이자 귀농을 결심한 김 촌장은 동생과 함께 소를 키워 200마리까지 늘리게 됐다. 

사진/독자 제공

사업가에서 소를 키우다 억만송이 배꽃 할아버지 됐다  

이후 근처 자갈밭들을 조금씩 사들였고 밤나무 등 유실수를 심었으나 별로 소득이 없자 배나무(4000주)를 심었다. 배나무는 잘 자라 주었다. 하얀 눈송이 같은 억 만 송이의 배꽃은 김 촌장에게 또 다른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쇠꼴마을(소먹이 풀이 많다하여 붙여진 이름)에 예쁜 화원을 가꾸고, 봄이면 억만 송이 배꽃축제, 여름엔 물놀이 축제, 가을엔 수생식물원을 비롯 배따기 축제, 겨울에는 눈꽃축제 등 농사체험 및 쇠꼴마을만의 테마가 있는 체험학습장을 만들었다. 이른바 관광농원을 만든 것이다. 

쇠꼴마을은 현재 서울시 교육청 현장 체험학습장이며, 경기북부관광협의회, 파주시 문화관광협회 후원 업체로 계절별 테마축제를 열고 있다. 기대 이상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며 가족단위로 또는 단체별로 체험행사 및 쇠꼴마을 테마축제에 참여함으로서 명실 공히 파주시의 명소로 자리매김 한지 이미 오래다. 


▣ ‘농업에 길이 있다’는 사명감으로 쇠꼴마을을 관광 상품화 계획 수립

“젖소를 키워 부농의 꿈을 안고 시작, 방목을 목적으로 확보한 자갈밭 군사격장에 밤나무를 심었으나 별다른 소득이 없어 4,000주의 배나무를 심어 판로를 개척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보니 칠레를 방문할 당시 독일인이 깊은 산속에 자급자족하는 영농의 현장을 상품화 한 것과 로렐라이 강 언덕에 돌 하나 세워 두었는데, 인어공주라며 많은 관광객이 몰려오는 모습을 보고, 바로 이러한 방법이 농촌을 살리는 길이라 생각해 쇠꼴마을을 관광 상품화 하는 계획을 수립했다”고 밝혔다.

김 촌장은 “이제 내 나이 77세다. 아직도 이곳 쇠꼴마을을 지키고 가꾸고 있는 이유는 인간 상록수가 되겠다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쇠꼴마을을 향상 시킬 수 있는 부분을 찾아 주경야독으로 수업을 듣고 있다. 이 큰 쇠꼴마을 모든 곳에 내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오랜 세월 퍼즐 맞추듯 조성한 계획이다 보니 더러는 시대적 감각에 미진한 부분도 있을 수 있다. 그래도 ‘농업에 길이 있다’는 사명감으로 45년 동안 꾸준히 쇠꼴마을을 가꾸어 왔다”는 말에 그가 꿈꾸어 온 농업인생을 엿볼 수 있었다. 

▣ ‘농업 옆에서 길을 찾은 후계자 아들 김정호’ 지역경제 활성화 도모로 생산, 가공, 유통, 관광까지 접목한 6차 산업

이렇게 김 촌장이 일군 쇠꼴마을을 후계자인 아들 정호 씨는 부친이 가꾸고 일군 농업에서 다양한 시설을 활용한 체험활동을 통해 농가소득을 증대시키고, 파주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해 생산과 가공뿐만이 아니라 유통과 관광까지 접목한 6차 산업의 길을 찾았다. 

아들 정호씨는 쇠꼴마을을 공유의 농업현장으로 영농사업부, 체험사업부, 귀한농부학교, 야영장인 교육사업부 등 농업을 분업화시켜 현재는 6차산업의 선두 주자로 우뚝 올라서 있다.  

김 촌장은 “언젠가 전동차를 타고 쇠꼴마을을 둘러보던 초등학교 교장단이 채석강, 나이아가라 폭포, 차마고도와 비슷하다는 소감을 남겼는데,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벽지 산간이었던 이 마을이 농민에게는 소득의 공간, 도시민에게는 휴식의 공간, 자라나는 청소년에게는 활력이 넘치는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도록 계속 정진하겠다”는 말에 아직도 고령의 나이에도 그의 열정은 넘쳐보였다. 


파주중앙도서관 1층 로비에서 ‘잠자는 자연을 흔들어 깨운 쇠꼴마을 촌장 김교화’가 전시돼 있다. 
사진/독자 제공

▣ 농업에서 길을 찾은 ‘쇠꼴마을 이야기’ 파주시 중앙도서관에 전시 ‘2020 ‘파주를 빛낸 올해의 인물 편’에 선정 

미군이 제공해 준 천막에서 공부하던 소년, 아픈 동생 걱정돼 잘나가던 사업도 포기하고 귀농해 소를 키우다 농업의 길을 택하고 억만송이 배꽃 할아버지가 된 김교화 촌장. 그의 일화와 같은 ‘쇠꼴마을 이야기’가 파주시 중앙도서관 1층 로비에서 전시중이다. 

특히 2020년 ‘파주를 빛낸 올해의 인물 편’에 선정돼 소품과 사진을 기획 전시를 하고 있다. 

중앙도서관 1층 로비에서 ‘잠자는 자연을 흔들어 깨운 쇠꼴마을 촌장 김교화’를 비롯 ‘아버지는 농업에 길을 찾고, 후계자 아들은 농업 옆에 길을 찾다’, ‘두메산골, 쇠꼴마을의 새로운 시작’, ‘강인하고도 애달팠던 어머니 사랑’, ‘전쟁과 마을 한배미댁 이야기’ 등 45년간 가꾸고 일구어 온 쇠꼴마을과 김 촌장의 인생 이야기와 사진을 만날 수 있다.  

경기 파주시 법원읍 금곡리 420-3
http://www.joyr.com/(쇠꼴마을)
031-959-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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