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목은 조선시대 파주지역의 행정을 관할하던 곳으로 파주 역사의 중심에 있었으며, 국왕이 파주 소재 왕릉에 능행하면서 유숙하던 행궁(국왕이 궁궐에서 벗어나 외부의 숙소에서 임시로 숙박하던 곳)이다. 아래 사진은 옛 기무부대(콘크리트 건축물) 운동장으로 행궁 정청에 사용됐던 주춧돌 발굴이 유력한 곳이다. 시굴 조사는 금촌동에 소재한 수도문물연구원에서 진행한다. 제공/육군1사단
[파주시대 김영중기자]=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현재는 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국왕이 왕릉에 능행하면서 유숙하던 행궁인 ‘파주목 관아지’ 복원을 위한 시굴조사 착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1일 이익선 파주시의원을 비롯한 양재일 ‘파주목 관아지’ 복원 추진위원장, 파주시 관계자, 오경택 수도문물연구원장, 증언자 황영수씨 등 20여명이 현장에서 만났다.
이날은 본격적인 시굴 조사에 앞서 필요한 자료와 정보 습득을 위해 1980년부터 (관아터)기무부대에 근무했던 황영수(예비역 준위, 68)씨를 초청, 콘센트 막사였던 것을 1985년 콘크리트 건물로 건립 당시 (정청에 사용됐던) 주춧돌이 나왔다는 당시 상황을 들었다.
‘파주목 관아지’ 복원 추진위원회는 2019년 출범 후 관련기관에 ‘파주목관아지 행궁 복원’을 위한 ‘청원서’ 제출 등 위원회의 꾸준한 노력 끝에 긍정적인 답변을 얻으며 탄력을 받아 4년의 인고 끝에 복원 사업 발굴 조사에까지 이르게 됐다.
파주시 또한 그간 파주목 디지털 복원의 기초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파주목 객사영역의 건축특징 학술고증연구(2019), 조선시대 파주 능행 및 파주목 행행 학술고증연구(2020), 파주목 관아건축 학술고증연구(2020) 등 연구용역을 수행해 온 결과 90%의 공정율을 보이고 있는 파주목의 주요 건물과 역사적 스토리가 디지털 콘텐츠로 재현될 예정이다.
시굴 조사에 나설 오경택 수도문물연구원장 “파주목 관아 객사 이런 것들이 있던 것은 사실에 입각해 보인다. 일제 강점기 때 자료도 충실히 남아 있다. 그런데 현재의 위치가 얼마나 정확하느냐에 따라 발굴 범위도 달라진다”며 “(흔적이 나오면)조사 결과를 토대로 발굴 범위를 잡아 문화재청 허가와 국방부의 허가를 받아 본격적인 발굴 조사를 하게 된다”고 밝혔다. 조사기간은 1개월에서 3개월의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이익선 (당시 추진위 사무국장)시의원은 “‘파주목관아지’를 복원해야 하는데 향교를 포함 전체 26채 659간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숙종, 영조, 정조 등에서 고종에 이르기까지 여러 왕이 주변 왕릉에 능행을 하며 유숙했던 행궁을 영상복원하고 있지만 실물 복원을 통해 파주초등학교 교육박물관, 향교와 연계 교육, 체험 학습 및 주민 문화생활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문헌상으로 세조 5년(1459년) 원평도호부에서 파주목으로 승격돼 437년간 조선시대 경제·군사·교통의 요충지이고 외교 사절이 경유한 곳으로, 현재는 파주읍 파주리 지역(현 1사단 기무부대 일원)에 소재했지만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으로 소실돼 이를 복원하기에 이르렀다.
조선시대 파주지역의 행정을 관할하던 곳으로 파주 역사의 중심에 있었으며, 국왕이 파주 소재 왕릉에 능행하면서 유숙하던 행궁(국왕이 궁궐에서 벗어나 외부의 숙소에서 임시로 숙박하던 곳)이기도 했다.
pajusidae@naver.com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