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랑포 옛터 전경, 저 멀리 호로고루성 성벽이 희미하게 보인다.
■파주 임진강 일대의 옛 나루터들은 한반도의 역사적 흐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파주를 감싸고 도는 한강과 임진강 변에는 오래전부터 사람과 물자가 오가던 포구와 나루터(1)가 무려 20여 개나 있었다고 한다.
이곳은 단순한 교통의 요지이기보다는 정치·경제·문화가 교차하는 생생한 역사의 현장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분단이라는 아픔을 겪으며 대부분의 나루터는 그 모습을 감추었고,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 어려워졌다. 연재 기사 1부에서는 파주 나루터의 역사적 의미와 주요 기능을 조명해 본다.
파주 지역의 나루터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한반도 물류 교통의 핵심 축이었다. 특히 임진나루는 한양과 개성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로 국가적 차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중국으로 가는 사신과 상인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이었으며, 이곳을 통해 문화와 물자가 오가며 다양한 문화 교류가 이루어졌다. 연천군에 속한 고랑포는 임진강 유역 최대의 포구로 그 규모와 중요성이 특히 두드러졌다.
강원도와 경기도 북부에서 생산된 세곡(稅穀)이 이곳에 모여들었고, 이 곡식들은 다시 한강을 따라 서울로 운반돼 국가 재정의 근간이 됐다. 그뿐 아니라 인근 지역의 특산물인 옹기, 한약재, 목재, 소금 등도 고랑포에서 거래됐다.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
“고랑포는 한탄강과 임진강을 끼고 있으며, 서해 바닷물이 밀려 들어오는 지역에 있다. 삼국시대부터 상업적, 교통적, 전략적으로 중요한 길목이었으며, 서울 마포나루에서 출발한 배들이 물물교환하던 곳이기도 했다.
한때는 화신백화점 2호점이 들어설 정도로 번성했지만, 한국전쟁 당시 고랑포 인근 여울목을 따라 북한의 탱크가 건너 쳐들어왔고, 전쟁 이후로는 민간인 출입통제 구역으로 묶이며 폐쇄됐다.
1960년대 후반 김신조 무장공비 일당들의 침투로 또한, 바로 이 근처였다. 그렇게 오랫동안 막혔던 이곳에 몇 년 전 고랑포구 역사공원이 생기며, 해설자를 따라 고랑포 옛터를 볼 수 있게 됐다”(고랑포구 역사공원 문화해설사)
현장에서 만난 문화해설사의 이야기는 책으로만 접하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현재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나루터에서 펼쳐졌던 일상의 모습과 전쟁의 아픔, 그리고 분단의 상처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군사적 요충지에서 평화의 상징으로
나루터는 경제적 중요성뿐 아니라 군사적 요충지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갖는다. 임진나루에는 임진진(臨津鎭)이 설치되어 군사적 중요성이 컸고, 북방 오랑캐의 침입이 잦았던 시기에는 이곳의 방어가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6·25 전쟁과 한반도의 분단은 임진강 일대 나루터와 포구에 결정적인 변화가 생겼다. 임진강은 더 이상 연결의 통로가 아닌 분단의 상징이 됐고, 많은 나루터가 민간인 출입통제구역(Military Civilian Control Zone)이나 비무장지대(DMZ)에 포함돼 그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반석나루터 – 문발IC 램프에서 오두산 전망대를 바라보면 물 위로 살며시 올라온 너른 반석이 선명하다. 그 뒤로 오두산 전망대 건물도 눈에 보인다.
■한강 본류의 마지막 나루, 반석나루
‘경기도 물길 이야기’에 따르면, 파주시에는 한강 본류에 4개 나루터가 있었다. 심학나루, 쇠재나루, 능거리나루, 반석나루가 그것이다. 이 중 특히 주목할 만한 곳이 반석 나루다.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에 있어 ‘제2의 인천’으로 불릴 만큼 많은 고깃배와 상선이 드나들었다.
반석나루(磐石津)는 강변에 안방 같은 큰 바위가 깔려 있다고 해 이러한 명칭이 붙여졌다. 이곳은 황해도 개풍, 김포, 강화를 거쳐 서해로 왕래하는 상선 배들이 물때를 맞추기 위해 쉬어 가는 주요한 나루로 수운의 요충지이다.
또한, 뱃사람들의 안식처로 시장과 많은 주막이 번창했었다. 최근에 반석나루터를 탐방하려고 정확한 위치를 찾고자 인터넷 포털을 뒤졌으나 헛수고였다. 찾아본 모든 자료는 정확한 위치를 특정하지 못했고, 제각각으로 두리뭉실하게 위치를 설명하고 있었다.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문발IC에서 반석나루터의 실체를 확인했다. 현재의 모습을 촬영하고, 현재의 사진으로 1930년대를 재현한 AI 이미지도 확보했다. 반석나루는 지금 한창 공사하고 있는 제2외곽순환고속도로 김포-파주 한강터널 근처에 위치에 있다. 하지만 지금도 군사통제구역으로 철조망에 가로막혀 민간인 통행이 금지되고 있다.
1930년대 AI 이미지로 변환시킨 반석나루
■디지털 기술로 재현하는 과거의 모습
연천 고랑포구 역사공원에서는 VR과 AR 체험을 통해 고랑포구에 새겨진 오랜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다.
이곳은 통일을 기원하는 메시지를 작성하고 호로고루를 지키던 고구려 병사가 되어보는 가상현실 체험 공간을 제공하며, 안보와 통일의 염원을 담고 있다. 이러한 기술적 시도는 사라진 역사를 생생하게 재현하고, 특히, 젊은 세대에게 과거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효과적인 매개체가 되고 있다.
■다시 찾은 역사의 현장
파주 나루터의 이야기는 책 속에 갇힌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지역 주민들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현재 진행형의 역사이다. 현장 답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듯이, 비록 나루터가 그 모습을 감추었지만, 그 자리는 이제 평화와 공존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공간으로, 과거를 추억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관광의 장소로 조금씩 변모하고 있다.
다음 연재에서는 구체적인 나루터와 포구에서 펼쳐졌던 삶의 이야기와 인물사(人物史)를 깊이 있게 들여다 볼 예정이다.
△나루는 ‘나르다’라는 동사에서 그 어원이 비롯된 것으로 짐작된다. 한자로는 도(渡), 진(津)으로 쓰며, 규모가 큰 나루는 포(浦)라고 하며, 대규모는 항(港)이라 한다. 또한, 군사적 요충지로 군대가 주둔하는 곳은 진(鎭)으로 쓴다.
사진/글 김명익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