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순 칼럼위원(前 임진초등학교 교장)
나라와 나라가 국교를 맺으면 상대 나라에 외교공관을 설치한다. 공관에 자국 국기를 게양하여 자국 영토와 같은 지위를 누린다. 우리나라는 2024년 2월 기준 수교국 193개국으로 유엔 회원국 중 미수교국은 시리아 1개국뿐이다.
해외에 거주하는 분들은 외교관에 게양된 태극기를 보면 눈시울이 붉어지고 감동을 받아 그 순간 모두 애국자가 된다고 한다. 특히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서 나라 사랑이 특별했던 분을 시간여행을 통해 만나보자.
19세기~20세기 일본에 진출한 프랑스·독일·이탈리아·중국·러시아 등 강대국들은 주일 대사관을 도쿄 아자부에 세웠다. 아자부의 옆 아카사카에는 미국과 캐나다 대사관이 있다.
아자부는 막부시대 지방 영주 다이묘들의 별장이 있던 곳으로 경비에 유리하여 대사관 자리로 적지였다. 도쿄 최고 부촌 미나토구(港區) 아자부(麻布)는 그렇게 외교 1번가가 되어갈 때 미수교국이었던 우리나라는 그림의 떡이었다.
외교공관도 외교관도 태극기도 없는 토교의 현실에서 부러움과 암담함으로 바라보기만한 분이 주인공이다.
식민지 상황인 1915년 경남 울주군에서 태어난 서갑호이다. 열네 살 때 식민지 주범의 땅 일본으로 건너가 사탕을 팔고 폐지를 모으며 돈을 모은다. 나라 없는 설움을 온몸으로 이겨내며 고군분투한 결과 1948년 방림방적(사카모토)이라는 방직 회사를 세운다.
그 회사가 급성장해 1950년대 ‘돈을 가장 많이 번 재일 교포’가 되었다. 조국 대한민국은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전란 중인 1951년 은행에서 거금의 돈을 빌려 일본 4·6대 총리 마쓰카타 마사요시의 저택 부지로 다이묘 별장보다 한 수 위의 땅을 산다. 여느 강대국 대사관 못지않은 8,264㎡(약 2500평)의 넓은 대지이다.
1965년 6월 22일 일본과 국교를 맺자 1951년에 구입한 도쿄 1번 요지를 대사관 자리로 무상기증 했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1300달러 정도의 약소국으로 변두리 땅을 사기도 어려웠다.
‘어떻게’의 해답은 “나라가 부끄러우면 안 된다”는 담대한 희망을 잇는 서갑호 회장의 의지였다. 때를 기다린 거인의 꿈은 일본의 심장부 도쿄 미나토구 아자부에 한국 영토를 마련하는 안목이었다.
그런 귀한 뜻을 실현한 서갑호를 이제야 기억하게 되었다. 사카모토방직이 1974년 오일쇼크 때 일본 금융기관들이 대출금을 회수하여 부도를 맞았다. 다급하여 한국 정부에 SOS를 요청했지만 외면했고 서 회장은 2년 뒤 서울에서 61세의 나이에 별세했다.
2024년 7월 12일 일본 도쿄 미나토구에 있는 주일 한국대사관저에 ‘동명재(東鳴齋)‘라는 현판을 새기는 제막 행사가 있었다. 1962년 동경 심장부에 주일 한국대사관부지를 기증한 고(故)서갑호 방림방적 설립자의 아호를 따 동명재(東鳴齋)로 명명하는 식이었다.
한참 늦었지만 큰 뜻에 보답하는 희망이 이어져 다행이다. “나라가 부끄러우면 안 된다”는 ‘높고 귀한 뜻을 잇는’ 중요한 행사였다. “어려울 때 나라를 도운 분을 기억하지 않으면 앞으로 누가 한국을 돕겠는가”라며 서 회장의 후손들도 초대했다.
나라도 국민도 가난했던 시절, 재일 교포들에게 자부심과 긍지가 된 “나라가 부끄러우면 안 된다”는 가르침이 종소리가 되어 울린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부끄러운 일을 이제 그치라는 경고로 돌린다. 남녀노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부끄러운 일을 생각하지도 말라는 이때를 위한 가르침이다.
서 회장의 손녀딸은 “한국을 짝사랑한 조부의 자료를 모으는 데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서 회장의 거룩한 뜻을 되새기기 위해 빈틈투성이 주일 한국대사관서회장 자료관이 정비되는 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