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순 칼럼위원(前 임진초등학교 교장)
세상이 혼란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 박물관에서 잠자는 정신문화의 진수를 꺼내 국민들을 각성하게 하는 누군가가 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더헌)’가 그 일을 해냈다. “오이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자두나무 아래에서는 ‘갓끈’을 고치지 말라”는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의 고사성어를 불러냈다.
없는 흠집을 만드는 ‘트집을 잡다’도 갓 만드는 일에서 비롯되었음을 넌지시 알려준다. 전통과 K-POP이 만난 케더헌 ‘사자 보이즈’가 쓴 흑립(黑笠, 갓)을 본 해외팬 들은 “소름 끼치도록 아름다운 검은 모자에 반했다”고 격하게 반응한다.
케더한 누적 시청 횟수가 3억2510만 회를 넘어가면서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에 세워진 갓 쓴 김대건 신부 상이 주목받고, 국립중앙박물관 뮷즈 ‘흑립 갓끈 볼펜’은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19세기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쓴 미국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도 “갓은 서양의 실크햇에 견줄만한 훌륭한 발명품이다. 잘게 쪼갠 죽사(竹絲,실처럼 잘게 쪼갠 대오리)와 비단실이 재료인데 뼈대를 이루는 죽사가 너무 섬세하여 비단실과 구별이 어렵다.”고 감탄 했다.
프랑스 민속학자 샤를 바라는 ‘모자의 나라’라며 우리 전통문화의 우수성에 매료되었다.
첨단과학 시대 사자 보이즈와 갓의 만남, 4대째 140여 년 간 무형문화재를 보존하고 있는 장인의 만남, K-문화와 세계인들의 만남으로 확장된다.
갓은 신분에 따라 흑립, 초립, 주립, 패랭이 등 다양했지만 의관(衣冠)을 정제(整齊)하는 삶의 기본정신은 같았다. 머리에 갓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올려 놓음으로 말과 행동을 절제하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기준이었고 다짐이었다.
관혼상제의 품격이었고 햇볕과 비바람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하는 삶의 지혜였다. 동그마한 곡선과 투명한 검은빛의 화사함을 갖춘 ‘조선의 모자 갓’의 등장은말도 안 되는 억지와 추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행패를 일삼는 분들에게 보내는 일침(一針)이다. 유치원에서 배우는 삶의 기본예절과 초등학생도 아는 삼권분립의 헌법 정신을 다시 배우라는 경고이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녹을 받고 있는 분들은 국민이 씌워준 갓을 쓰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자신이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손자 손녀가 보고 디지털 영상으로 기록되어 다음 세대에게 고스란히 전파되어 검색하면 다 나온다.
성질이 전혀 다른 죽사와 명주실을 조화롭게 엮는 장인정신에서 화합의 진수를 배우라는 명령이다. 이해와 존중, 배려는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화합하라는 희망 메시지이다.
누에 입에서 자아낸 순백의 실로 비단을 짜듯 사람 살리는 제대로 된 말과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사명을 감당하라는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