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훈 국민서관(주) 콘텐츠기획본부장
프랑스의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가 기요틴 처형대의 계단을 오르다 사형집행관의 발을 실수로 밟은 후 남긴 말이라고 한다.
아마도 자신의 실수가 몹시도 마음에 걸렸었나 보다.
어떤 한 주교는 자신의 침상에 둘러 서서 찬양하는 사람들을 향해 "박자 좀 맞추어 부르시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죽었다고 한다.
아마도 박자가 틀린 찬양 때문에 죽기 전에 몹시도 짜증이 났던 모양이다.
청교주의적 성향을 띤 영국 교회 성직자였던 쿠알레스는 "살기 시작하는 자는 죽기 시작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삶과 죽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죽음이라는 과정을 통해 형태만 달라질 뿐 현재의 삶과 죽음 이후의 삶이 결국 같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감히 해보곤 한다.
앙투아네트와 주교는 삶과 죽음의 이러한 관계를 좀 더 소상하고 깊게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러니 죽음을 앞두고도 그렇게 담담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베토벤의 마지막 말은 "나는 천국에서는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내 친구들이여 박수를 쳐라. 코미디는 끝났다"였고,
슈베르트의 마지막 말은 "여기 누워 있는 것은 베토벤이 아니다"였다고 한다.
죽음을 영원한 끝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그들을 위대한 인물로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꽃이 진 자리를 푸른 나뭇잎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제법 무성해졌다고는 하지만 온전한 나뭇잎도 벌레 먹어 구멍이 뚫린 나뭇잎도 하늘을 다 가릴 수는 없다.
때가 되면 돋아나고 때가 되면 지기를 반복해가며 그저 하늘과 어우러질 뿐이다.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고 낙엽이 되어 떨어질 때가 되면 나뭇잎은 이런 말을 남길지도 모르겠다.
"실례했습니다. 하늘을 가리려고 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구멍이 뚫렸던 나뭇잎은 자신의 모습이 몹시도 마음에 걸렸을지 모른다.
어쩌면 내년에는 꽃으로 피어날지도 모르겠다.
봄은 생명을 태동시키는 계절이지만, 성직자 쿠알레스의 말대로라면 이미 죽기 시작하는 계절일 수도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마지막에는 어떤 말을 남겨야 할지.
미리미리 생각해보는 일이야 말로 어쩌면 이 봄의 끝자락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일이며,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을 준비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여러분은 지금 어느 계절을 살아가고 계신가요?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계절이라도 상관없다.
'살기 시작하는 자는 죽기 시작한다'는 말은 생각하기에 따라 '죽기 시작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반증이다'라는 말도 가능 할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이 바로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