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훈 국민서관(주) 콘텐츠기획본부장
피타고라스나 소크라테스적인 의미에서는 신(神)만이 지자(知者: sophos)이다.
인간은 지자가 아니기 때문에 지(知: sophia)를 애구(愛求)하는 유한적(有限的) 존재이다.
그리스어 ‘philosophos’는 철학자(愛知者)라는 의미이며, 따라서 ‘philosophia’는 소위 현자(賢者)나 지혜의 본성이 신에 비교한다면 무(無)와 같다는 것을 명확하게 자각(自覺)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이를 ‘무지의 지(無知─知)’라고 한다.
소크라테스가 말하길 무지의 지는 소극적 측면에만 머무르지 않고 나아가 미망(迷妄)을 밝혀주어 진실한 지에의 문을 열게 되며, 이러한 자각을 자기의 본질적 계기로 하였을 때에 비로소 ‘가능한 한 신과 비슷하게 되는 것’이 ‘philosophos’의 목표로 설정되어야 한다고 했다.
소크라테스의 우월(優越)은 본래적(本來的)인 지의 이데아에서 자기의 무지(無知)를 자각하는 것이 다름 아닌 무지의 지라는 것을 깊이 알고 있었다는데 있다.
어렵게 설명되어 있지만 간단히 얘기하자면 아마도 이런 뜻일 것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부족하고 무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지하다는 걸 자각해야만 지자(知者)인 신의 영역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니 기꺼이 무지해라. 단, 깨달아야 한다.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철학적 활동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에는 "신과 대면하여 그를 알아볼 수 있는 인간의 놀라운 능력을 회복하라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의 지혜가 신에 비하면 하찮은 것에 불과하며 무엇보다 먼저 자기의 무지(無知)를 아는 엄격한 철학적 반성이 중요하다"라는 통찰이 담겨 있는 것이다.
서양에서 말하는 철학자를 동양적 사상에서 찾자면 '군자'가 이에 해당될 것이며,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 동양에서 태어났더라면 아마도 군자로 불렸을 것이다.
"내가 오직 연을 사랑함에 진흙 속에서 났지만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으며, 속이 소통하고 밖이 곧으며 덩굴지지 않고 가지가 없음이다. 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으며 우뚝 깨끗이 서 있는 품은 멀리서 볼 것이요, 다붓하여 구경하지 않을 것이니, 그러므로 연은 꽃 가운데 군자라 한다."
중국 북송시대의 유학자 주돈은 '애련설'에서 연꽃을 꽃 가운데 군자라 불렀다.
비록 진흙 속에서 피어나지만 깨끗함과 향기로움이 세상의 풍파에 얽매이지 않는 군자와 같은 풍모를 연꽃이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수목원의 넓은 연못에 연꽃이 활짝 피었다.
무지의 지를 연꽃이 알리가 없지만,
그 연꽃을 바라본다고 군자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연꽃에게는 있다.
아마도 이는 나의 어리석음과 무지가 그 맑고 깨끗함에 그대로 투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은 혼란스럽지만 연꽃이 한창인 요즘이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어려운 시국일수록 연꽃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연꽃에게 묻는다면 아마도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의 무지를 깨닫는 엄격한 철학적 반성이다.”
우리 자신부터 제대로 알아야 하고 상대의 무지를 제대로 짚어야 한다.
통찰이 필요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