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순 칼럼위원(前 임진초등학교 교장)
세상의 신비 중 으뜸은 봄이다. 언제 끝날 것 같지 않은 동토의 하얀 사막 겨울도 온기와 생기를 불어넣는 봄을 이기지 못한다. 생명이 약동하는 대지에는 두껍고 무거운 땅을 뚫고 단단한 껍질을 찢는 고통을 이겨낸 새싹이 솟아 나온다.
모진 겨울을 이겨낸 새싹들은 비바람과 무더위와 가뭄과 병충해와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에머슨은 “삶의 노력에는 속임수가 있을 수 없다”는 가르침을 준다.
밀물이 물러가면 갯벌이 드러난다. 갯벌에서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장면이 게들의 움직임이다. 바르게 걷는 사람들을 조롱하듯 뻘을 게걸음으로 걷는다. 위험을 느끼면 순식간에 굴로 숨어 안테나를 세우고 사주경계를 한다. 그래도 어부의 손길을 피할 수 없다.
게잡이 어부들이 발견한 이론이 크랩 멘탈리티(crab mentality)이다. 한두 마리를 잡았을 때 뚜껑을 닫지 않으면 게걸음으로도 순식간에 탈출한다. 게잡이에 몰두하다가 뚜껑 닫는 것을 잊었다.
다 놓친 줄 알고 화들짝 놀란 어부가 양동이를 살펴보니 게거품을 물고 영켜 있다. 탈출하려고 나서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 붙는다. 얼기설기 스물아홉 마리가 달라붙으면 천하장사도 속수무책이다. 펄펄 끓는 솥으로 들어가 게찌개가 된다. 어부는 ‘집착(執着)’하면 함께 죽는다는 진리를 발견했다.
크랩 멘탈리티(crab mentality)라고 명명한 게들의 행태는 편을 가르고 온갖 거짓 선동과 분노 촉발, 경멸, 발목 잡고 끌어내리기에 집착(執着)하는 현실을 꼬집는다.
두루미들은 고공에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소리를 내는 습성이 있다. 치명적 약점이고 독수리들에게는 허기를 면할 공격 포인트가 된다. 두루미들과 독수리들의 사느냐 죽느냐의 아슬아슬한 생존게임이다.
두루미 연구자들이 놀라운 사실을 목격했다. 경험 많고 나이든 몇몇 두루미들이 산을 넘기 전 돌멩이를 하나씩 입에 문다. 사망의 음침한 타우르산맥을 무사히 통과하기 위해 자발적 재갈 물리기를 한다.
체력소모를 최소화하고 길을 잃지 않기 위해 V자 대형을 유지하며 침묵의 수행을 한다. 놀랍고 감탄할 생존의 발상 앞에 고개가 숙여진다.
“집착(執着)하면 눈과 귀를 잃는다”고 한다. ‘집착’은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못하는 함정에 빠지거나 문제 상태에 묶이는 질병이다. 소리 내는 본성을 극복하고 V자 대형으로 서로를 보호하는 타우르스 두루미의 ‘집중의 힘’은 우리가 배워야 할 상생의 모델이다.
상생과 화합의 V(Victory)자 대형을 이룰 것인가, 끌어내리다 공멸하는 ‘게 싸움’을 계속하다가 뜨거운 맛을 볼 것인가?
나·너·우리는 각자의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누군가의 편이라면 왜 그편을 드는가? 그편을 들면 무한경쟁 시대에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가? 청년세대와 남녀와 세대를 갈라치면 이 나라가 더 좋아지고 자신의 삶이 펴지나?
편 가르기는 이 땅에 살아갈 아들·딸 손자·손녀들에게 물려줄 가치가 있나? ‘금수(禽獸)만도 못한’ 그 짓을 누구를 위해 계속해야 하는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42.195km를 달리는 마라톤은 인간 한계를 극복하는 경기로 몇 번의 dead point(극단적 고통의 시점=사점)를 겪는다. 2017년 12월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마라톤 대회에서 1위로 달리던 ‘첸들러 셀프’가 결승선 180여 미터를 앞두고 비틀거리며 주저앉는다.
그 뒤를 바짝 따르던 열일곱 살 고등학생 2위 주자 ‘아리아나 루터먼’은 ‘첸들러 셀프’를 일으켜 부축하고 함께 뛰기 시작한다. 의식이 희미한 ‘첸들러 셀프’에게 “당신은 할 수 있어요, 결승선이 바로 저기 있어요”라고 격려하며 함께 달린다.
결승선에서 ‘첸들러 셀프’의 등을 밀어 1등을 하도록 배려했다. 진정한 승부는 ‘경쟁’이 아니고 ‘상생’임을 몸으로 보여준 아름다운 장면이다.
3.1절로 시작하는 3월 앞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고 노래한 윤동주 시인과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노래한 이상화 시인 앞에서 다짐해야 한다.
우리가 오늘 보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온 산하는 목숨을 초개 같이 버린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희생 위에 세운 나라이다. 오늘도 155마일 전선에서 사명을 다하는 군인들 덕분에 최고의 날을 보내고 있다.
우리는 그분들께 합당한 예우를 했나? 장성출신 의원이 현역장군들과 군인들을 희롱하고 유튜브를 찍는다. 국가의 생존 비밀을 누설하며 다그치는 모습은 거품을 물고 끌어내리는 게를 닮지 않았나?
올해 우리 국군 전역증 재발급이 작년 동기 대비 12배 폭증했단다.
미국에서 제대군인이 전역증을 제시하면 박물관·미술관·관광지·쇼핑몰·음식점 등에서 특별 할인을 받는데 우리나라 전역자들에게도 같은 혜택을 준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킨 “미국의 혈맹”이라고 존중을 한다.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킨 분들에 대한 진정한 배려이다. 그런데 군인들을 위한 예산을 깎고 사과 한마디 없다. 로마 황제는 퇴역군인에게 고액의 상여금과 청동판에 소속 부대와 계급을 새긴 전역증을 발급해주어 예우에 정성을 쏟았단다.
우리는 지금 엉뚱한 곳에 집착을 하다 희망의 싹을 틔울 시기와 꽃피울 때를 놓치고 있다. 그 시기를 놓치고 잃어버리면 열매를 맺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오늘’은 젊은이들에게는 빛나는 희망을 선물하고, 어르신들에게는 합당한 예우로 가장 실용적인 희망 메시지를 사용할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