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훈 국민서관(주) 콘텐츠기획본부장
상자 안에 방사능 원자와 고양이 한 마리와 독약이 든 병이 있다.
방사능 원소가 붕괴하면 이를 기계가 감지해 스위치가 내려가고,
스위치에 연결된 망치가 독약이 든 병을 깨뜨려
고양이가 죽는다.
원소가 붕괴하지 않으면 고양이는 살아있다.
보통 상식으로 고양이의 생사는 우리가 상자를 열어보든 그렇지 않든 이미 결정되어 있어야하지만 양자역학은 우리가 상자를 열어보지 않으면 고양이는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중첩된 상태'를 유지한다고 본다.
우리가 상자를 열고 관찰했을 때에야 비로소 고양이의 상태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가 양자역학의 기이함을 설명하기 위해 제안한 사고(思考) 실험으로 우리는 이를 '슈뢰딩거의 고양이'라고 한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물질의 형태로 그 물질을 정의하지만,
양자역학의 관점에서 보면 물질은 사람이 관측하기 전까지 여러 가능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입자일 수도 있고 파동일 수도 있으며, 여기에도 있을 수 있고 저기에도 있을 수 있는 '중첩된 상태'라는 것이다.
복잡하다.
붉게 물든 담쟁이를 만났다.
내 눈에는 어디론가 바삐 가고 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진짜 어디론가 가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관찰자인 내가 보기 전까지는 어디로 가고 있을 수도 있고 가고 있지 않을 수도 있는 '중첩된 상태'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담쟁이가 내 눈에 띈 순간 결정되었다.
담쟁이는 겨울로 바삐 가고 있는 중이었다.
늦가을은 그런 계절이다.초겨울은 그런 계절이다.
바쁘게 삶을 준비하여야 할 계절이고,
가을의 감성과 겨울의 이성이 중첩되는 그런 시간이기도 하다.
혼돈의 시간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내게 묻는다.
'중첩된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상자를 열어볼 생각은 없는가?'
내가 대답한다.
'나는 이미 붉게 물든 담쟁이를 보았다.'
여러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겨울을 잘 준비하고 계신가요? 아니면 여전히 중첩된 상태에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