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순 칼럼위원(前 임진초등학교 교장)
대한민국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는 앞선 분들의 희생과 헌신 덕에 최고의 문명 혜택을 누리는 행운아들이다. 가난 극복의 최우선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숨 가쁘게 달려오느라 앞선 세대의 희생과 헌신의 참모습을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우리 스스로 살피지 못한 위대한 저력을 60여 년간 학자의 눈으로 연구한 분은 하버드 대학에서 은퇴를 앞둔 마크 피터슨 교수이다. 교수님의 증언을 따라가면 우리의 진면목과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희망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
1965년 열아홉 살 청년 피터슨은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 여행을 계획한다.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가난하고 위험한 나라에서 배울 것이 없다고 말리는 부모님을 설득하여 한국에 왔다. 피터슨이 마주한 현실은 무너진 건물, 굶주리고 지친 사람들이었다. 빈대와 벼룩과 이와 싸우고 인분 냄새가 진동하는 세계에서 힘겹게 사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보았다.
1965년의 현실을 한국은행 발표 2024년 통계로 살펴보면 1953년 우리나라의 GDP가 477억 원이었다. 2023년 2,401조 원으로 70년 동안 5만366배 늘었다. 1인당 국민소득은 1953년 67달러였는데 2023년 3만6194 달러로 540배 늘었다. 연평균 GDP 성장률 9.4%, GNP 성장률 6.9%로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속담을 뒤집은 세계최초의 국가이다. 70여 년 전 수준은 1인당 국민소득은 현재의 540분의 1, GDP는 현재의 5만336분의 1이었음을 알 수 있다.
피터슨은 폐허가 된 서울, 무너진 건물들 사이에서 책을 읽는 학생들을 보았다. 골목마다 등잔불에 의지하여 새벽까지 공부하는 청년들도 보았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자녀교육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 부모들과도 마주쳤다.
책 한 권을 수십 명이 돌려 봐 닳고 낡아 글자가 희미해진 책들을 진열한 서점도 보았다. 폐허와 가난과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읽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배움에 대한 열정을 발견했다. 피터슨은 세계가 주목하지 않는 한국이 반드시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인생행로를 결정한 운명의 여행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간 피터슨은 60여 년간 하버드 대학에서 한국 연구에 매진하여 한국인만의 독특한 DNA를 발견했다. 금속활자와 인쇄기술, 창조적 발명품 ‘한글 보유의 나라, 독특한 교육열이다.
1997년 미국의 라이프지는 새로운 천년(밀레니엄)을 앞두고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으로 금속활자 인쇄기술을 선정하였다. 한국의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는 구텐베르크의 42행 성경보다 78년 앞섰고 금속 배합 비율, 활자 주조방식이 실크로드를 통해 전해진 사실도 밝혀졌다.
금속활자 인쇄기술이 유럽의 르네상스(문예부흥)로 꽃피웠고 정교한 금속활자 제작 기술과 혁신적 사고방식은 한국인의 DNA임이 증명되었다.
한국의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 기술과 문화 콘텐츠, 방산기술, 원자력과 AI 기술, K-푸드 등으로 새로운 형태의 ‘인쇄술’로 세계 문며을 선도하고 있다.
발음기관과 천지인(天地人)을 바탕으로 창제한 ‘한글’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어 인공지능과 자연어처리 분야에서 가장 이상적인 문자이다. 글로벌기업들이 AI 언어모델로 연구하고 있다.
백성을 널리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 지식을 모두와 나누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금속활자의 인쇄기술’, 백성을 널리 이롭게 하는 “훈민정음 창제”의 맥은 한국인의 교육이념이고 현재진행형이다.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를 이롭게 하는 중차대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의 오늘’이 어디까지 도약할지 예고편이고 본편은 시작도 안 했다는 피터슨 교수의 기대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현실로 돌아와 진단해보자. 세계를 주도할 준비를 제대로 하고 한국인의 DNA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문화체육관광부가 2024년도 최고치가 아닌 최저치를 경신한 국민 독서 실태를 발표했다. 우리 국민 열 명 중 여섯 명은 365일 내내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 200만원 이하 소득자는 500만원 이상 소득자보다 다섯 배 적게 책을 읽는다며 독서량의 격차가 소득 수준의 차이로 연결됨을 지적하고 있다.
위기(危機)는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는 낱말이다. 우리는 숱한 위기를 기회로 전화위복하며 살아왔다. 70여 년 전 폐허의 상황에서 책을 읽던 DNA를 깨우자. 새 학기를 맞아 초·중·고의 모든 학생부터 어르신들까지 책 읽기를 시작하자.
파주시 도서관에서 주관하는 ‘독서마라톤’을 달려보자. 완주하여 인증서와 배지도 받고 독후감을 써서 책도 만들자. 책을 읽지 않으면 지혜의 지갑이 없다. 얇은 책만 읽는 사람의 지갑은 그 책보다 더 얇다. 고전과 지혜로운 책을 읽는 사람의 인생 지갑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지혜의 샘이다.
맑은 정신, 밝은 영혼, 바른 가치관, 옳은 도덕관, 지혜와 용기, 인내심과 바른 양심을 가진 한국인으로 거듭나는 길이 독서에 달렸다. MZ 세대들이 혼란한 시대를 현명하게 살기 위해 헌법 책을 읽는다니 혼란의 격랑을 책 읽는 국민이 끝낼 수 있다.
자녀를 양육하는 모든 부모는 귀한 자녀가 독립된 인격자로 성장하는 비결이 독서에 달려있고, 치매 예방의 특효약이 바로 책을 소리내어 읽는 것이란다.
안중근 의사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고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口中生型棘)을 실천하셨다. 사형을 앞둔 시점에도 “5분만 기다려 달라. 읽고 있던 책을 마치지 못했다”다는 독서의지를 우리가 실현하자.
공자님은 "나를 위해 바른 길을 공부하라"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사는 길은 독서에 달렸다. ‘오늘’은 책 읽기를 시작하기 가장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