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순 위원
파주교육지원청 교육자원봉사센터장
열흘이 넘는 긴 추석 연휴가 순식간에 지나가고 모두 일상의 자리로 돌아갔다. 우리나라에도 한 달의 1/3을 연휴를 즐길 만큼 여유가 생겼다는 자부심이 솟는 기간이었다.
명절 연휴가 짧을 때는 우리 딸들이 시댁에서 하루나 이틀을 보내고 바쁘게 친정으로 오는 관계로 아이들을 맞이하느라 여느 가정처럼 분주한 일정을 보내야 했는데 긴 연휴를 보내면서 둘 만의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고향 나들이에 몸도 마음도 한창 바쁠 때 우리 부부는 ‘특별 휴가’를 받은 것처럼 한가함과 평안함의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명절 기간에 손님이 없으니 ‘명절 음식 차리는 수고’도 줄어서 집사람도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성인도 시속을 좇으라‘고 했듯이 변화해가는 시대조류를 순리대로 따라 딸들이 시댁에서 돌아오는 날에 맞추니 여유롭기도 하고 기다림 뒤에 오는 기쁨의 강도가 훨씬 감동적이었다.
그렇게 추석 명절을 의미 있게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간 삶의 현장 중 교육현장은 추석연휴에서 맛볼 수 없는 삶의 참 맛을 느끼게 하는 기쁨의 현장이다. 생기발랄하고 활기가 넘치는 어린이들을 만나는 즐거움은 경험해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기에 나는 청소년들과의 만남을 늘 설렘으로 기다린다.
그 설렘과 만남의 기쁨으로 어느 학교에서 학교폭력 예방 교육을 마치고 나오는데 한 아이가 따라 나오면서 “선생님 추석 같은 거 안 지내면 안 되나요?”라는 질문을 했다. 갑작스럽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아이들의 지칠 줄 모르는 재잘거림에서 추석명절 연휴가 아이들에게는 또 다른 방학과 같은 즐거움이고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는 기쁨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일가친척들을 만나면서 좋은 음식도 먹고 용돈도 받았을 터인데 ‘왜 이런 질문을 할까?’라는 생각이 들어 조용한 장소에서 그 아이가 겪은 ‘추석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추석 연휴가 길어진 관계로 아빠는 할머니 댁에 오래 있고 싶고, 엄마는 짧은 연휴 때는 외할머니 댁에 잠깐 들렀으니 이번에는 친정에서 며칠 더 있고 싶은데 아빠가 동의를 안 해주어서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차 안에서도 다투셔서 ‘추석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할머니 댁에 가 있는 동안에도 외할머니 댁에 가야하는 문제로 눈치를 보며 계속 불편을 겪었는데 결정적인 사건은 외할머니 댁에 가는 길에 접촉 사고가 나면서 아빠의 분노가 폭발했다고 한다. 자기 아빠가 그렇게 심한 욕설을 하는 분인지 처음 알았다고 한다.
명절이 되면 반복되는 엄마와 아빠의 갈등을 불편한 일상을 바라보는 아이의 답답한 심정을 들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다. 어떻게 답을 주어야 할지 몰라 위로 보다는 그냥 공감(필자도 어렸을 때 그런 경험을 했다)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쳤다.
추석 특집으로 보내는 방송에서 어느 상담 전문가는 추석명절 전부터 추석 연휴가 끝난 뒤에도 상담 일정이 빡빡하게 잡혀 있다고 한다.
말로만 듣던 ‘명절 증후군’에 대한 이야기를 그 아이와 상담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명절 뒤끝’에는 꼭 치유와 회복의 위로가 필요함을 깨닫고 스스로 반성문을 쓴다.
나 한사람이라도 ‘명절 증후군’으로 후유증을 앓고 있는 ‘마음이 아픈’분들께 위로의 글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쓴다.
“추석 연휴기간 수고하신 대한민국의 주부 여러분을 진심으로 위로합니다.” “정말로 수고하셨습니다.” 먼 길 다녀오느라 피곤하고, 긴 연휴기간 삼시세끼 손님상 차리고 설거지 하느라 온몸이 고단하신 여러분! 쪼잔 하고 속 좁은 대한민국의 남편들을 대신하여 위로와 사과를 드립니다.
선물도 준비하고 차례 상 차리느라 애쓴 며느님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은 있어도 표현하시지 못하는 시어머니들을 대신하여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추석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그 아이는 올해 같은 ‘다툼과 갈등’의 추석이 아니라 기쁘고 즐겁고 감사하며 섬김과 나눔의 ‘아름다운 상생의 명절’을 꼭 만들 것을 믿습니다.
며칠간 본가로 처가로 오가며 자식 된 도리를 하며 즐거움을 선물한 우리 딸과 사위와 손녀딸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말하기 수업 셋째 시간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