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학당 서교송
파주를 대표하는 선현으로 율곡선생, 황희정승, 윤관장군이 있습니다.
세 분은 각각 대학자이자 실천적 경세가로, 청백한 명재상의 표본으로, 또 문인이지만 국토를 수호한 지휘관으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큰 업적을 남기신 분들이십니다.
율곡 이이 선생은
현재의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일원이 조상들부터 살아 내려온 본향이고,
율곡(밤나무골)이라는 호(號)도 이 마을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며, 유명한 화석정도 이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또, 자운서원과 선생의 묘, 부모님의 묘 등은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방촌 황희 정승은
지금의 문산읍 사목리 임진강변에 반구정을 짓고 노년을 보냈으며, 후에 탄현면 금승리에 묻히셨습니다. 방촌영당과 반구정, 묘, 불천위사당 등의 관련 유적이 파주에 남아있고,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유적을 수호하고 있습니다.
묵재 윤관 도원수1)는
광탄면 분수리에 묘와 사당이 있습니다. 또 법원읍 금곡리에 상서대와 낙화암이라는 유적과 전설을 남기고 있습니다.
세 분 모두, 나라와 백성을 위한 남다른 족적을 남기셨고, 파주와 깊은 연관을 맺고 계셨기 때문에 우리고장의 역사적 자랑으로 여겨지며, 파주삼현으로 불리어왔습니다.
‘파주삼현’이라는 명칭은 1990년대 초반부터 사용되었습니다. 1990년 파주시에서 율곡선생과 신사임당, 황희정승, 윤관장군 관련 사료를 모아 ‘파주선현의 사상과 얼’이라는 책자를 발간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이듬해인 1991년 파주교육청(현재의 파주교육지원청)에서 ‘파주삼현 얼 계승교육’을 특색사업으로 추진2)하면서 비롯되었습니다.
이후 학교 교육과 지역에서의 다양한 문화활동 등을 통해 세 분의 선현이 우리지역 파주를 대표하는 역사인물로 인식되어 왔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삼현수간(三賢手簡)은 조선 중기 성리학의 큰 학자인 세 분이 주고받은 서간을 모아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율곡선생과 우계 성혼 선생, 구봉 송익필 선생이 그 주인공입니다. 율곡선생과 우계선생은 동국 18현으로 문묘에 배향될 만큼 존경받는 인물이고, 구봉선생 역시 학문적 경지나 문학적 위상이 빼어난 것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삼현수간’은 학문에 대한 열정과 세상을 바로 세우고자 하는 의리정신, 상대의 부족함을 질책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선비정신, 녹봉과 조제약을 나누고 가정사와 건강을 염려하는 인간적인 면모까지 속살을 감추지 않고 보여주는, 세 분의 삶의 모습이 오롯이 담겨있는 소중한 보물입니다.
그런데 최근 파주삼현에 대한 의문과 혼란이 있습니다. 일부에서 삼현수간의 삼현이 파주삼현이라는 주장을 하는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삼현수간이라는 서한집이 이미 있었고, 또 도학적 관점에서 편지글의 주인공들을 파주삼현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같은 주장은 좀 더 세심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파주삼현이라는 호칭에는 파주라는 지역성과 현인(賢人. 어질고 총명하여 성인에 다음가는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현재 지역서 통용되는 의미를 단순화 하자면 ‘파주를 대표하는 위인’으로 정리해도 될 것 같습니다.
기존 파주삼현으로 불리고 있는 율곡선생, 황희정승, 윤관장군은 25년이 넘는 세월동안 교육 현장이나 문화행사 등을 통해 알려졌고 시민들과 함께 호흡해왔으니, 위의 요건에 부족함이 없다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삼현수간의 세 분 중 율곡선생과 우계선생은 파주에 거처를 두고 계셨으나, 구봉선생은 이제껏 알려진 기록에는 고양 지역에 거주했던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최근 구봉 선생이 파주의 인물이며, 구봉이 심학산이라고 주장하는 글들이 퍼지고 있지만, 명확한 근거와 자료를 가지고 논의를 발전시켜야 할 것입니다.
또, 전해오는 기록들과 이야기를 근거로 고양의 인물이라고 말하고 있는 구봉 선생을 굳이 파주의 인물이라고 지역을 한정하고 목소리를 높여야 할 까닭도 없습니다.
아울러, 세 분 선생의 학문이나 문장이 뛰어났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부분이지만, 그 삶에 대한 평가에는 이견이 있습니다. 동서당쟁의 격화와 신분적인 차별 등의 상황이 있었겠지만, 역사의 기록은 사뭇 냉정합니다. 또, 개인의 재능이 뛰어남 보다는 국가와 백성들의 안위를 위해 헌신함이 위인들의 삶이었음을 생각할 때,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 세간의 평가를 다르게 하는 기준이 되는 것을 탓할 일은 아닙니다.
역사는 새롭게 발굴되기도 하고, 과거의 가치는 변하기도 하는 법이어서 고정된 관념이 병이 되기도 합니다. 파주삼현이 四賢이 될 수도, 五賢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삶의 규범이 될 위인들의 이야기가 많아질수록,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해 줄 귀한 이야기가 더 많아질 것입니다.
다만 그 바탕은 진실을 드러내야 하고, 시민들의 공감이 있어야 합니다. 재밌는 이야기 만들기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그 뿌리를 살피고 현재에서의 유익함을 따져야 할 것입니다. 눈앞의 성과나 이익을 위해서 역사를 근거없이 논단하는 愚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파주삼현은 공감을 통한 변화를 거부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현재를 유지하고, 삼현수간에 대해서는 한 시대 파주를 중심으로 이뤄진 세 벗의 이야기를 담은 귀중한 보물로, 삼현수간의 세 분 선생은 기호학의 세 학자(三學)로, 혹은 진솔한 우정의 귀함을 보여준 세 친구(三友)로 기억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파주삼현’이나 ‘삼현수간’ 모두 파주의 소중한 역사문화 유산입니다.
그 안에 담긴 가치를 찾아 현대에 이으려는 노력은 귀한 일입니다. 지역의 역사적 문화적 유산을 발굴하고, 이를 교육을 통해 현대에 활용하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각주)-------------
문인이지만 군대를 총 지휘하는 도원수의 직을 맡아 큰 활약을 펼쳤기에 일반적으로 장군으로 호칭하고 있다.
「坡州 三賢 ‘얼’ 繼承 敎育에 대한 硏究」 1998. 최종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