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숙 논설위원
1948년 한반도 분단 이후, 남북 두 정상이 처음으로 만난 2000년 6월은 남북정상회담의 해였다. 북한의 김정일이 정권유지에 대한 압박감에 미국을 의식했고,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어쨌거나 대한민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이 평양에서 세기의 만남을 성사했고 회담 마지막 날 6.15 남북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북한은 회담 이후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대한민국이 주최하는 스포츠 경기에 적극 참가하는 등 민간 교류 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하는 듯했다.
순조로운 조짐이라 짐작한 국내에서는 김정일이 서울을 답방할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었으나 국제 정세의 급변 등 알 수 없는 이유를 들어 해프닝으로 마무리했다. 같은 해 12월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 최초 정상회담과 햇볕정책을 기반으로 한반도 평화를 증진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두 정상의 회담 이후 국제적 스타는 북한의 김정일이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 두 정상이 분단 이후 최초로 만나는 화해의 장면을 시기적절하게 연출하며, 국제적 은둔의 수장 김정일이 화해의 수장으로서 국제무대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할 수 있었다.
당시 국제적 고립의 위치에 있던 김정일 뒤에는 북한 주민들의 굶주림이 핵무기로 둔갑을 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북한은 6.25사변(국제명칭 한국전쟁, 이하 6.25전쟁)) 이후, 화해의 제스처와 도발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 1950년 6월 25일 발발하여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되기까지 동족 간의 기나긴 6.25전쟁은 남북한 500만 명에 이르는 인명피해와 1,000만 명 이상의 이산가족의 아픔을 문신처럼 새겨 놓았다.
싸워보지도 못한 연평도 천안함폭침사건을 연평해전이라 부르는 나라. 북한군의 포탄이 빗발치는데도 대한민국 해군은 대응하지 말라는 명령을 했고, 이유도 모른 채 대응 사격 한 번 못해보고 전사한 억울한 원혼 천안함폭침사건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북한군의 포탄에 몸부림치며 죽어가는 전우들을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던 장병들과 그 아비규환 현장을 생각해 보라. 이 나라는 대한민국이고 대한민국 바다에서 우리의 병사들이 북한군의 포탄을 맞고 산화한 것이 전쟁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줏대 없는 대한민국 정부는 무엇이 그리 무서운지 전사한 장병들을 버린 자식 취급했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장병은 있어도 내 나라 장병을 지키는 대통령은 없다. 자국의 안보를 망각한 청맹과니들이 대한민국 정부를 움직인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대북정책도 바뀐다. 이 나라는 대통령만 됐다하면 북한 비위맞추기에 혈안이 되고, 평양에 가지 못해 안달이 난다. 북한을 향한 비굴한 구애의 모습은 대한민국 국민의 자존심을 뭉갠다.
북한의 제스처는 상징적 화해의 모습일 뿐이고 피와 전쟁이 거래의 자본인 나라다. 한반도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활화산처럼 전쟁이란 용암이 펄펄 끓고 있는 중이다. 무시로 일어나는 전쟁으로 산화한 원혼들의 희생과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수상. 그 숭고함을 곰곰이 생각해 보는 6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