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국민서관(주) 콘텐츠기획본부장
어느새 추위가 피부로 느껴지는 계절이 되었다.
단풍도 아직 제대로 들기 전이고, 들녘의 추수도 아직 다 끝나기 전인데,
성질 급한 추위는 조금 이르다 싶을 정도로 성큼 다가왔다.
하늘을 가르는 겨울철새들의 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무렵에 철새의 이동에 대해 배웠던 기억이 있다.
겨울철새는 추위를, 여름철새는 더위를 피해서
우리나라를 찾아온다는 걸 배우면서
제대로 납득하지 못했던 기억이다.
‘우리나라가 가장 추워지는 겨울에
추위를 피해 우리나라에 온다고?’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주 조금 궁금하기는 했었다.
공부에 흥미는 물론 열정도 없었기에
모든 과목의 성적이 그리 다 신통치 않았다.
수업을 열심히 듣지도 않았지만 설혹 수업의 내용 중
이해를 못한다거나 궁금한 게 생겨도 질문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섣부른 궁금증이나 호기심으로 선생님으로부터
관심을 받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철새에 대한 궁금증은 그렇게 잊혀졌다.
겨울에 오는 새는 겨울철새고 여름에 오는 새는
여름철새라고 그냥 머릿속에 각인시켜 버렸다.
겨울철새가 원래 살던 곳의 겨울추위가 얼마나 혹독한지,
여름철새가 원래 살던 곳의 여름더위가 얼마나 가혹한지,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겨울이면 내가 있는 곳이 세상에서 가장 추운 곳이며,
여름이면 내가 있는 곳이 가장 더운 곳이라는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사고였으니 성적이 좋지 못했던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겨울철새들이 남쪽을 향해 부지런히 길을 재촉하고 있다.
철새들의 힘겨운 날갯짓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벗어났는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우물을 벗어나기 위해 저 철새들처럼
치열하게 날갯짓을 해본 적은 있는가?’
부끄러울 뿐이다.
지금 다시 공부를 한다고 해도 성적은 여전히 신통치 않을 것이다.
이럴 땐, 우물 구멍으로 보이는 동그랗고 작은 하늘이 아니라
크고 넓은 하늘을 날아가는 철새들의 고단한 날갯짓조차 부럽다.
그들에게 한 마디 건넨다.
“혹시 날다가 우물이 보이거든 그 속에 살고 있는
개구리들에게 힘찬 날갯짓을 보여주시게나."
어느새 가을은 깊어질 대로 깊어졌고 겨울은 멀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치열하게 살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