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국민서관(주) 콘텐츠기획본부장
일출이 시작될 무렵의 그림자는 서쪽으로 가장 길다.
태양이 중천으로 향할수록 그림자의 길이는 점점 짧아지다가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면 그림자는 다시 조금씩 동쪽으로 길어진다.
일몰의 마지막 무렵에는 동쪽으로 가장 길다.
그림자의 위치는 길과 논과 밭을 가리지 않는다.
화려한 색을 덧입거나 치장을 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태양의 움직임을 따라 단출한 색으로 길어지거나 줄어들 뿐이다.
그림자는 스스로 알고 있다.
제아무리 높아지려 애를 써보아도,
제아무리 화려한 치장을 하더라도,
그저 헛된 몸부림일 뿐이라는 걸 말이다.
그림자가 길어지거나 줄어들더라도,
그림자가 자갈밭이나 진흙구덩이에 위치하더라도,
있어야 할 제 길 위에 서있는 사람의 그림자라면 조금도 동요치 않는다.
홀로가 아니라 동행의 그림자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림자의 길이를 줄이고 늘이는 태양이라 할지라도
그림자의 숫자는 늘릴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자갈밭에 있더라도, 진흙구덩이를 걷더라도
함께 가는 길이면 그 길이 꽃길이다.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후보자들은 물론이고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선거 기간 내내
자갈밭을 걷고 진흙구덩이를 헤쳐 나왔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제 고생은 끝났고 꽃길로 접어들었다 생각할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길이 끝이라도 난 듯 털썩 주저앉았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선거는 인생의 여러 길 중 하나일 뿐이다.
당선자나 낙선자나 본인이 있어야 할 제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 그림자는 조금도 동요치 않을 것이다.
홀로가 아니라 동행이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선거는 끝났다.
모두의 길이 꽃길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