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에 대한 취향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음악적 재능이 부족한 나 같은 경우에는 주로 가사에 따라 선호하는 노래가 결정된다.
그러므로 좋아하는 노래의 대부분이 시와 같이 아름답거나 내 마음의 갈증을 적셔주는 노랫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가끔은 꼭 그렇지 않은 경우를 만나기도 한다.
지난주 예배 때의 찬양이 그랬다.
작자 미상의 <너 근심 걱정 와도>는 찬양 곡이라는 특성에 비춰봤을 때
지극히 평범한 가사를 가지고 있지만 듣는 내내 마음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미국 남부의 흑인들 사이에서 만들어졌다는 독특한 댄스 리듬인 ‘셔플 리듬(shuffle rhythm)’이 ‘아무 걱정 하지 말라’는 위안과 희망의 가사가 만나 마음에 평안을 준 탓일 것이다.
걱정이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엄청난 재물을 가진 사람일지라도,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빛나는 명예를 가진 사람일지라도,
단 한 가지의 걱정도 없이 무조건 행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걱정은 할수록 커진다.그렇다고 걱정거리가 있는데 무신경하게 넘길 수도 없는 일이다.
신경을 안 쓴다고 작아지거나 사라질 걱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랬다면 애초에 걱정으로 등장하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거리를 해결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영민하지 못한 나 같은 경우에는 잠시 거리두기를 한다.
가능하면 객관적 시선으로 걱정거리의 실체를 보려고 노력한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사이즈의 걱정이라면 그냥 수용한다.
고통스럽겠지만 받아드림으로 걱정을 키우거나 다음으로 넘기지 않는다.
어쩌면 이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사이즈라면 최선을 다해 정면 돌파를 한다.
부딪치고 또 부딪친다.그리고 기도한다.
기도할 때 마음에 힘을 주는 노래가 있다면 금상첨화다.
지난주 예배에서의 찬양이 내겐 그랬다.걱정거리는 누구에게라도 있다.
하지만 그 걱정에서 나를 지켜주는 존재가 있다는 걸 믿는다면 수용과 돌파의 방법이 아니더라도 능히 이겨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하늘이 아름답다.저토록 아름다운 하늘이라면
근심과 걱정이 무슨 대수겠는가 싶기도 하다.
사랑 속에 거하고, 영원 속에 자유하고, 평화 속에 유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기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