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승아 칼럼위원(한국문인협회 회원(중앙/파주))
이상한 그릇(마지막회)
꼬맹이는 가족들한테도 그렇게 웃음과 사랑을 주는데, 그 힘이 제딴에는 매우 작은 것만 같아서 못마땅했어요.
꼬맹이는 친누나들과 형들 사이에서 스스로 도울 일을 찾기보다 말썽을 더 많이 피우는 골칫거리라고 생각했어요.
열두 명의 누나, 다섯 명의 형이 있는데 모두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을 찾고 또 잘하니까요. 열두 명의 누나들은 손재주가 많아서 꼬맹이를 데리고 하루도 심심치 않게 보낼 수 있는데, 꼬맹이가 누나들한테 잡힐까 봐 피해 다녀요.
큰누나는 살림살이를 도맡아 하면서도 그릇 만들기에 열심이에요. 밑이 뾰족한 그릇은 큰누나의 발상이었죠.
그런데 오래 쓰고도 쓸모가 없다고 이웃 어른들의 반박에 부딪히자, 큰누나는 바로 밑이 평평하고 넓은 그릇으로 바꾸었더랬어요.
그래서 집 안 여기저기에 큰누나의 밑 넓은 그릇들이 꽤 많이 있어요. 처음에는 크기가 제각각이라고 불평을 많이 들은 그릇들이었는데, 점점 인기가 좋아졌어요. 속이 깊은 그릇은 주전부리를 담아 두기에 좋고, 속이 얕은 그릇은 실뭉치를 담아 두기에 좋다는 거예요.
아무리 큰누나가 마을 어른들한테 밉보여도 꼬맹이만은 큰누나를 믿었어요.
“누가 뭐래도 큰누나가 최고야. 큰누나만큼 그릇을 잘 만드는 어른은 없을 거라고.”
대왕 할아버지의 기술이 비밀인 것처럼 큰누나한테도 비밀이 있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비밀은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 말이라는 것쯤은 꼬맹이도 알고 있었고, 큰누나의 비밀이기에 꼭 지켜야 했어요.
꼬맹이 말고도 도운 가족이 또 있어요. 바로 둘째누나예요. 둘째누나는 큰누나의 시험에 기꺼이 응해 주었어요.
언제나 큰누나가 만든 그릇이며 옷이며 둘째누나가 먼저 써 보고 결정했거든요. 큰누나는 둘째누나가 말해 주는 대로 고쳐서 세상에 내놓기 때문에 흠이 없을 거라고 자신 있어 했어요.
꼬맹이가 둘째누나를 좋아하는 까닭은 그렇게 궂은 일도 나서서 돕기 때문이에요. 다른 누나들은 큰누나의 눈을 피해서 늦게 일어나기도 하고, 밭으로 나가서 일하는 척하는데요. 꼬맹이는 둘째누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과감하게 헌신하는 모습만큼은 닮고 싶어 했어요.
둘째누나는 가족들 가운데서 가장 화려해요. 멋 부리기 좋아해서 조개껍질이나 동물뼈를 목과 손목에 주렁주렁 달고 다니죠. 하지만 꼬맹이는 그런 모습을 부끄러워했어요.
그런 둘째누나이지만, 큰누나가 옷을 지을 때마다 먼저 입어 보고 이웃 아주머니들의 핀잔을 막아 주어요. 새롭게 만든 그릇도 먼저 써 보고 씩씩하게 말해 주면서요.
재주가 많은 누나들 덕분에 가족한테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잘 풀 수 있어 좋았어요. 심심하지도 않고, 배울 점도 많고요. 꼬맹이도 누나들 곁에서 흙반죽 놀이를 하며 밥그릇과 국그릇을 만드는 것쯤은 일찍이 터득했어요.
그뿐이 아니에요. 불에 그릇을 구워내는 것도 할 줄 알게 되었는걸요. 여러 해 동안 본 것만 세어도 얼마나 많은 줄 몰라요.
누나들이 꼬맹이의 눈에 씩씩하게 비칠 때마다 꼬맹이는 누나들을 믿고 의지하게 돼요. 그래서 꼬맹이는 대왕 할아버지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형들, 삼촌들 모두를 자랑스러워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