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희 객원기자
현 파주지역 문화연구소장
스토리텔러 이윤희의『파주시대 파주이야기』스물세번째 이야기
남북을 연결하는 自由와 平和의 세 길
임진각에서 만나는 통일로 · 자유로 · 경의선 철길
1번 국도의 끝길 통일로(統一路)
1번 국도는 전남 목포에서 평북 신의주까지 연결되는 종단국도다. 일제강점기에 건설되기 시작해 20세기를 가로지르는 한반도 역사와 문화의 실크로드이며 근대화의 산실로 중요하게 자리매김 해왔다.
경기도의 경우 1번국도는 서남단을 거슬러 경기도 평택, 오산, 수원, 광명에 걸쳐 있으며 서울을 경유해 다시 고양, 파주, 문산까지 이르러 휴전선까지 연결되고 마침내 서북단 끝인 신의주에 다다른다. 1번 국도는 서울을 경유하면서 서울시 은평구 구파발에서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임진각에 이르는 구간을 통일로(統一路)로 명명해 부르고 있다.
49.2km에 달하는 통일로는 조선시대에도 중국으로 통하는 유일한 육로인 의주로(義州路)가 근간이 되어 이루어진 도로이다. 왕복 2차선 도로였던 국도가 남북회담이 개최되기 전인 1972년 왕복 4차선의 도로로 확장되었는데 이것이 파주사회에 미친 영향은 실로 대단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통일로 주변이 대대적으로 정비되었는데 초기에는 주택에 페인트칠만 하는 등 전시 위주였다. 그러나 1978년부터 1980년까지 주택개량 새마을 사업과 맞물려 통일로변 주택이 대폭 개량됐을 뿐만 아니라 주택자체가 신개축 되었다. 그리고 파주는 통일로의 개통으로 서울과 교통이 원활해 지면서 파주발전의 큰 계기가 되었다.
통일로는 최근 교통량이 급증하면서 고속화 도로의 기능을 잃었으며 서울-문산간 고속국도가 새롭게 건설될 계획에 있다.
자유와 평화로 통하는 길, 자유로(自由路)
자유로(自由路)는 국가 정책사업인 통일동산 조성계획과 동시에 맞물려 추진된 도로로 향후 통일을 대비하는 남북간 연결도로의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건설되었다. 아울러 장래 수도권 서북부지역의 교통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고 한강 하류지역(행주대교-통일대교)의 항구적인 수해방지 대책 수립도 그 건설 목적에 포함되어 있었다.
자유로는 행주대교에서 한강 하류 강변을 따라 임진각 통일대교까지 폭 51m, 도로높이 6.5m, 총연장 46.6km의 길이다. 1단계 행주대교에서 이산포간 도로가 1990년 10월 27일 착공해 1992년 9월 완공되었으며 이산포에서 통일대교까지 2단계는 1991년 착공되어 1994년 9월 16일 완공되어 전 구간이 개통되었다.
자유로 개통으로 파주지역의 낙후지역이었던 교하, 탄현지역에 출판도시를 비롯해 헤이리예술마을, 영어마을, 오두산 통일전망대 등 수도권 최고의 문화예술 관광지가 들어서면서 수도권 최고의 문화예술 관광지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에는 자유로 인근의 신도시 개발에 따른 교통량 증가로 인해 운정신도시에서 서울 상암까지의 제2자유로가 개통되었다.
경의선(京義線) 철길
경의선은 파주를 관통하는 철길로서 별다른 교통수단이 없었던 시절에 신설된 역을 중심으로 도로와 상가가 생기면서 지역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경의선은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이 그 해 2월 21일 서울∼의주(499.3km)간 군용철도 부설을 위한 임시 군용철도감부를 설치하였으며, 이를 한국주재 일본군사령관 예하에 전속시켰다.
1906년 4월 3일 용산∼신의주간 철도가 완전 개통되었으며 같은 해 9월 1일 관리권이 군용철도에서 통감부철도관리국으로 이관되었다. 1908년 4월 1일부터는 부산∼신의주간 직통 급행열차인 융희호가 운행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후 중·일 전쟁을 계기로 복선화가 진행되었다.
그 당시 철도부설을 위해 일본은 농번기에 농민을 강제로 끌어가고 식량과 가축을 징발하여 농촌은 공동화되었으며 1906년 5월 15일자 대한매일신보는 ‘철도 가 지나는 지역은 온전한 땅이 없고 기력 남아있는 사람이 없으며 열집에 아홉집은 텅 비었고, 천리길에 닭과 돼지가 멸종하였다.’고 개탄했다.
파주의 경의선은 부설 당시 일산 다음역으로 금촌역과 문산역, 현재 휴전선 근처의 장단역이 있었으며 1956년 5월 11일 교하 야당리에 금촌역 관리의 운정역과 1967년 9월 1일에 문산역 관리의 파주역이 역무원 무배치 간이역으로 개설되었다.
1998년에는 기존의 파주역을 폐쇄하고 월롱면 위전리 면사무소 앞에 월롱역(서영대)과 파주읍 봉암리에 파주역(두원공대)을 각각 신설하게 되었다.
경의선은 남북의 화해와 협력이 진행되면서 1992년 남북 기본합의서에 남북철도 연결을 명시하였고 2000년 7월 1차 남북장관급 회담때에는 철도 연결에 합의하고 그해 9월에 임진각에서 경의선복원 기공식이 열렸다. 그 후 2002년 9월 경의선 연결공사가 착수되고 2003년 6월 군사분계선 철로가 연결되었으나 핵문제 등 북미 관계 악화로 무산되었다.
남북은 여러가지 우여곡절 끝에 2007년 5월 군사보장 합의서를 체결하면서 운행이 중단된지 56년만에 열차시험운행을 하였으며 7개월 후인 2007년 12월 11일에는 개성공단의 자재와 생산 물량의 수송을 위해 문산-봉동간 화물열차 운행을 시작하므로서 경의선의 유럽 연결을 위한 첫 걸음을 하였다.
복선 전철 개통에 이어 경의 · 중앙선 직결 운행
경의선을 개량하여 수도권 전철을 운행하도록 하는 사업은 1989년 일산신도시 개발 계획과 함께 일산신도시 교통 대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하지만 12월 2기 지하철 및 서울-신도시 전철건설 계획이 확정될 때 경의선 전철화 계획은 무기한 연기되고 일산 지역의 교통 대책으로 일산선(현재 지하철 3호선)만을 건설하게 되었다.
이후 경의선 전철화 사업은 여러 차례 지연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1999년 착공되어 10년만인 2009년 7월 1일 문산까지의 구간을 개통 전 구간이 복선 전철화 되었다. 특히 한반도 통일 이후 물동량 급증을 대비해 복복선화가 즉시 가능하도록 철도 노반을 2배로 넓게 잡아 놓았다.
그리고 지난 해 12월 27일에는 경의선 전철 용산-공덕 구간이 개통되면서,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 직결운행이 시작되었다. 이로써 문산에서 용산-청량리를 거쳐 경기도 동북지역인 양평 용문까지 갈아타지 않고 한 번에 갈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