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병원 이은희 간호사가 윤후덕 의원에게 보낸 편지 전문
“따뜻한 시선으로 봐라봐 주십시오!”
“지금 우리가 무서워하는 것은 메르스가 아니라 주변의 차가운 시선입니다.”
2015년 6월 22일 월요일, 저희 파주병원은 국가시책에 의해 갑작스럽게 병원을 폐쇄하였습니다. 구리시 소재 카이저 재활병원에 170번째 메르스 확진환자가 발생하여 카이저 병원은 폐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에 따라 그 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이시던 환자분들 중 일부인 51명을 저희 병원에서 격리 보호 관찰하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갑작스런 경기도의 지시에 병원 전체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저희는 지금까지 메르스 청정지역인 파주를 지키기 위해 24시간 전 직원이 조를 나누어 병원 출입구에서 내원하는 모든 사람의 체온측정과 손 소독, 마스크 착용 등을 실시하고 있었고 감염위원회를 중심으로 전 직원 교육을 통해 철저히 감염에 대한 예방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렇게 노력하는 중에 불가항력적으로 “메르스” 발생 병원의 환자를 수용하라는 것은 기가 막힌 일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노력해온 것들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 같은 허탈감과 공포감이 밀려왔지요.
주위는 술렁댔지만 그럴 겨를조차 없이 도의 지시에 의해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갔고, 입원치료를 받고 계신 140여명의 환자분들을 설득시켜 원하는 곳으로 후송조치하고, 병실을 소독하고 새로운 환자 받기위한 작업이 순식간에 이루어졌습니다. 짧은 시간에 참으로 영화 같은 일들이 벌어졌던 거지요.
“왜 구리에서 먼 우리 파주까지?”
“왜? 메르스 청정지역인 우리 파주에?”
“왜? 하필 파주병원에?”
“왜? ... 왜?....”
빗발치듯 쏟아지는 질책과 원망 섞인 항의를 들으며, “우리는 지역거점공공병원인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 직원이다! 공공병원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우리가 누구보다 잘 알지 않는가? 우리까지 거부한다면 이 불쌍한 분들은 어디로 가야한단 말인가?”
직원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이렇게 최면을 걸 듯 다짐하며, 오로지 환자분들만 생각하고 이틀에 걸쳐 한 분 한 분 환자분을 모셨습니다. 단지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는 이유로 곤히 잠 자야할 한밤중 시간에 무슨 죄인이 된 듯한 위축된 모습으로 휠체어에, 이동식 침대에 실려 이동해 오시는 분들을 보며 눈물이 났습니다.
그 많은 병원들 중에서 서로 받지 않겠다고 하여 이 곳 파주까지 옮겨 오셔야 했을 죄 없는 분들을 보며 우리 직원들은 묵묵히 한마음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환자분들과 인연이 시작되었고, 낯선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었습니다.
혹여 발생될 만의 하나 사태를 대비하여 보호장비를 철저히 착용했고, 병원 안팎 소독은 더욱 강화되었지요. 집에 어린아이나 노부모님이 계신 직원들은 가족과의 생이별이 시작되었습니다. 가능한 모든 인력은 병동으로 투입되었고, 방역, 청소, 발열체크 등 전 직원이 나누어 할 수 있는 업무를 새롭게 분장하였습니다.
레벨 D방호복을 입고, 그 위에 비닐 옷을 한 겹 더 입고, 고글을 쓰고, N95마스크를 착용하고, 손에는 두 겹 세 겹의 의료용 장갑을 낍니다. 환자 한분 한분을 볼 때마다 새롭게 장갑을 바꿔 끼고, 소독을 하고, 옷을 바꿔 입습니다.
이렇게 24시간을 환자 곁에서 지내는 일은 그야말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재활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으시던 분들이라 거의 대부분의 환자분들이 스스로 거동하여 일상생활을 하시는데 어려움이 있으신 분들입니다. 밥 먹여드리기, 대소변 치워드리기, 욕창방지를 위해 규칙적인 체위변경은 물론 목욕, 머리감기, 양치질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의료진의 손길을 필요로 하시는 분들입니다. 공기하나 통하지 않는 땀복 같은 방호복 속에서 가만히 있어도 땀은 온몸을 타고 흐르고, 숨은 턱턱 막힙니다. 고글은 뿌연 김이 서려 시야도 흐릿합니다. 옷의 구조상 화장실에 가는 것이 번거로워 목이 말라도, 허기가 져도 먹지 못하고 참습니다. 평생 흘려야 할 땀을 다 흘린 것 같다고 합니다.
업무를 마치고 탈의를 하고 고글과 마스크를 벗은 얼굴은…. 땀을 흘리다 흘리다 퉁퉁 부어 언뜻 보면 누군지 알아 볼 수가 없습니다. 기진맥진 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 것 같습니다. 환자분들과 근무하는 의료진의 식사는 모두 일회 용기에 포장해 제공되고 남은 것과 그곳에서 사용되어진 모든 것들(린넨류, 옷, 식기류 등등)은 소각 처리되고 있습니다. 근무자 이외의 외부출입은 전면 통제하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내부에서는 소소한 것에서부터 비중 있는 것까지 필요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하루 온종일 침상에 누워 말벗도 없이 입원 목적인 재활치료도 받지 못하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계신 환자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고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병실에 들락대는 유일한 사람은 우주복에 겹겹이 쌓여 얼굴조차 알아 볼 수 없는 의료진들 뿐. 휴대폰을 다루실 수 있는 분이나 운 좋게 TV가 있는 1인실에 들어가신 분들은 그나마 낫지만 텅 빈 병실에 아무것도 없이 덩그러니 혼자서 누워계신 분들은 “환장하겠다!” 라고 하십니다.
그 분들을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까요? 집에 있는 아가와 가족들 또 친정이나 시댁으로 피난(?) 보낸 아이와 가족이 너무나 보고 싶어 가족들과 생이별한 의료진들은 밤마다 눈물을 적시며 잠이 듭니다. 이렇게 우리의 일상은 달라졌습니다.
전 직원이 두려움 속에서도 내색하지 않고 오직 환자만을 생각하며, 그리고 격리기간 동안 모든 환자가 아무 일 없이 지내다가 평상시처럼 일상으로 돌아가는 그 날 만을 생각하며 이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묵묵히 견뎌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무서워하는 것은 메르스가 아니라 주변의 차가운 시선과 유언비어, 그리고 자녀가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왕따 당할까 하는 걱정입니다.
의료진이 무슨 균 덩어리도 아닌데 요즘 완전 죄인이 된 기분이라 슬퍼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파주병원에서 근무한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는데 요즘은 죄지은 사람처럼 움츠러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본분인 환자치료에만 전념하면 되는데 요즘 주변 분위기는 그렇게 관대하지 않습니다.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십시오! 우리 가족이라 생각해 주시고 응원해 주십시오!
그러면 저희는 더욱더 힘내어 건강한 파주시, 건강한 경기도, 나아가 건강한 대한민국을 위하여 혼신의 땀방울을 모두 쏟아 낼 것입니다. 훗날 웃으며 추억으로 얘기할 수 있는 그날을 꿈꾸어 봅니다.
2015년 6월 28일
파주병원 간호사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