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국민서관(주) 콘텐츠기획본부장
다 그런 건 아니지만,돌이켜 보면 지나간 시간들은 대부분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어릴 적 다녔던 국민학교는 아주 넓은 운동장과 넉넉한 교실이라는 좋은 기억으로 유년의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고,
몹시도 춥고 허리까지 찰 정도로 많은 눈이 내렸던 오래된 기억 속의 겨울은 지금의 겨울과는 다른 겨울다운 겨울로 기억되어 있다.그런 기억들 때문인지 현재는 늘 마음에 차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 다시 찾은 현재의 초등학교는 기억 속 국민학교와는 너무도 다른 작고 협소한 운동장과 교실이었고,
눈 대신 비가 더 자주 내리거나 철 이른 꽃이 피어나곤 하는 겨울답지 않은 요즘의 겨울은 추억 속 그 겨울과는 사뭇 달라서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거리에서 길을 잃기 일쑤다.그래서인지 과거의 기억은 때때로 지친 삶에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현재와 미래에 시간에 무기력한 혼돈을 만들기도 한다.
좋은 것만 기억하고자 하는 기억의 오류가 만든 일종의 착시현상이다.벗어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시간도 이미 과거라는 것을 인식하면 된다.
나중의 시간 속을 살아갈 내게 지금의 이 순간 역시 좋은 기억이 될 거라 믿으면 된다.그렇게 의도적으로 좋은 기억을 남기는 일에 익숙해지다 보면 과거의 좋은 기억을 이해하게 되며 현재와의 간극이 사라지게 되고 다가올 미래를 의식하게 될 수 있다.미래가 현재가 되는 순간이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현재와 미래를 좋은 기억으로 남길 수 있는 건 바로 그 순간이다.하늘로 우뚝 솟은 십자가는 언제나 제자리에 있지만 구름은 날마다 흘러간다.미래가 현재가 되고 현재가 과거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