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국민서관(주) 콘텐츠기획본부장
어느새 봄을 지나 여름의 초입에 접어들었습니다.
봄으로 꽉 채워졌던 지난 계절이 벌써 그리워지려고 하지만
이맘때의 새벽도 제게는 선물 같은 시간입니다.
꽃은 아직 다 저물지 않았고, 기온은 적당하며,
차분히 깔린 공기를 타고 귓가를 간질이는 새소리는
마치 노련한 춤꾼의 춤사위와 같이 제 마음을 흔듭니다.
그러다 잠시 멈춘 새소리 사이로 절묘하게 고즈넉함이
녹아들기라도 한다면 이보다 더 완벽한 절정은
존재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 계절의 새벽은 그래서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봄을 활짝 열었던 첫 꽃은 이미 져버렸습니다.
처음이라 유난히 더 반가웠던 봄의 전령들이었지만
이제는 점점이 바닥에 내려 또 다른 꽃으로 다시 피어납니다.
그래서 더 깊어지고 충만해지는 계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충만해서 오히려 아쉬운 봄이 저물고 있지만
그 아쉬움 때문에 제 마음은 점점 더 깊어진 만춘(晩春)입니다.
일년을 석 달씩 네 계절로 나누었을 때,
봄에 해당하는 석 달(음력 1월, 2월, 3월)중
마지막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가
'만춘(晩春)'이라고 합니다.
음력 3월을 달리 부르는 말이기도 하고,
늦봄이라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는데
제겐 어쩐지 좀 어색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아마 늦가을을 뜻하는 '만추(晩秋)'에 길들여져 있어서
만추의 아류를 듣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만하(晩夏)'나 '만동(晩冬)'이 익숙하지 않듯이 말이다.
첫 꽃은 이미 지고 말았지만 그래도 서럽지는 않습니다.
그 다음에 필 꽃, 또 다음에 필 꽃들이 줄을 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아쉬운 건 점점 비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첫 꽃이 채워짐의 시작이었다면 그 다음의 꽃들은
비워짐의 시작으로 제게 다가옵니다.
봄이 비워지면 여름으로 채워지겠지만
그럼에도 저물어가는 봄은 참으로 아쉽고 또 아쉽습니다.
파주의 오늘,
서럽지는 않지만 여전히 아쉬움의 봄입니다.
그래서 만춘(晩春)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파주도, 제 마음도 시방 만춘(晩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