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국민서관(주) 콘텐츠기획본부장
임마누엘 칸트는 그의 저서 ‘도덕형이상학의 기초’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덕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그들을 부나 명예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체로 존중’한다는 뜻이다.”라고 주장했다.
봄이 되니 집을 짓기 위해 새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집을 짓는 새들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새들에게도 층간소음에 의한 갈등이 있을까?’
‘새들에게도 집을 여러 채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이나 집착이 있을까?’
‘높이어 귀중하게 대함’이라는 사전적인 뜻을 가지고 있는 ‘존중’의 반대말을
찾아보자면 아마도 천대, 비하, 폄하, 무시, 멸시, 경멸, 하대 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그런 단어들 보다는 ‘이기심’이 더 걸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타심이 강한 사람이라면 누군가를 존중하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이기심이 강한 사람은 누군가를 그 자체로 존중하는 일보다는
그 누군가를 이용하여 자신의 부나 명예를 얻는 일에 더 능숙하기 때문이다.
새들은 번식이 필요할 때만 주변의 재료들을 이용해서 스스로 집을 짓는다고 한다.
사람들처럼 건축업자에게 맡기거나 호화로운
자재를 비싼 금액으로 구입하지 않는다.
번식기만 머무는 집이고 그 시기엔 모두 다 새끼를 키우는
입장이니 층간 소음으로 서로 얼굴을 붉힐 일이 없다.
번식 후 새끼들의 이소가 끝나면 미련 없이 떠날 집이기에
소유에 대한 집착이 있을 리도 없다.
그러니 새들은 생활은 이기적일 수가 없다.
누군가를 그 자체로 존중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타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반대로 이기심은 날마다 조금씩 자라난다.
도덕적인 삶을 살기가 어려운 이유이다.
나무들 사이로 새로운 집들이 하나 둘 보이고
버려졌던 집들을 보수하는 일로 분주하다.
소유하지 않을 집이기에 결코 집착하지 않는다.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를 수 있으면 그만이다.
그래서 새들은 이 봄이 즐겁다.
새들을 보는 일이 즐겁다.
새들을 보며 마음속에 짓고 있던 커다란 집을 허물어버린다.
공허가 아니라 충만함이 남는다.
조금이라도 빈 자리엔 새들의 노래가 채워진다.
이 봄이 즐거운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