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국민서관(주) 콘텐츠기획본부장
남미의 우림 지역에 데사나'‘라는 부족이 살고 있다고 한다.
데사나 부족은 세상의 모든 피조물 사이에 흐르는 에너지의 양이 고정되어 있다고 믿는 부족이다.
그러니까 모든 탄생은 사망을 낳고, 모든 사망은 탄생을 가져오는 식으로 세상의 에너지는 동일하게 순환 유지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데사나 부족은 식량을 얻기 위해 사냥을 할 때 자신이 죽이는 동물이 영혼의 우물에 구멍을 남긴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긴 구멍은 데사나 사냥꾼이 죽었을 때 그의 영혼으로 메워진다고 믿는다.
따라서 죽는 사람이 없으면 새나 물고기가 태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세상살이는 너무 넘쳐도 그렇다고 너무 부족해도 팍팍해진다.
그건 아마도 물질이 정신을 지배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물질이 많다고 무조건 행복한 건 아니다.
물질이 적다고 꼭 불행한 것도 아니다.
많고 적음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가 문제이며 많고 적음의 문제를 어떻게 받아 들이냐가 관건이다.
데사나 부족은 '고정된 에너지의 양'으로 많고 적음의 문제를 풀어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에너지의 양은 고정되어 있다.
그러니 누군가 더 가지려고 한다면 다른 누군가는 당연히 모자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취한 것은 당연히 자신이 갚아야 한다.
반드시 갚아야 하는 거라면 애초에 무리하게 취할 이유도 없는 것을 데사나 부족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소유가 아니라 세상의 에너지를 동일하게 유지하는 일을 더 중요시했다.
그들은 그렇게 사람의 영혼으로 새나 물고기를 잉태시켰다.
지난 강추위를 견뎌낸 작은 열매들이 바짝 말라버렸다.
흠뻑 뒤집어썼던 눈마저도 녹아 내렸지만 여전히 나뭇가지의 끝자락을 붙들고 있다.
끈질기게 버티고 있는 건 욕심이 남아서가 아니다.
아직은 떨어져 내려서 메울 영혼의 구멍이 생겨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흐르는 에너지의 양이 고정되어 있다면,
내게 없다고 불행한 일이 아니다.
내게 많다고 우쭐될 일도 아니다.
데사나 부족처럼 생각하며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의 영혼이 잉태시킬 새나 물고기의 영혼조차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며 물질의 많고 적음으로 행복과 불행을 저울질 할 일도 없을 테니 강추위를 견뎌낸 작은 열매 하나를 보는 일에도 감사하며 살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