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국민서관(주) 콘텐츠기획본부장
사람들의 발걸음이 빈번한 길에 떨어지는 은행열매는 특유의 냄새 때문에 기피의 대상이 된다.
혹시라도 밟게 될까봐 사람들은 피해 다니기 일쑤지만, 그럼에도 부지불식간에 밟히고 짓이겨져 거리를 더럽히는 일이 다반사다.
하지만 커다란 은행나무 밑 나지막한 정자의 지붕 위에 떨어진 은행열매는 느긋하게 세상을 구경하며 겨울을 맞이한다.
이처럼 같은 냄새를 풍기는 은행열매라 할지라도 어느 곳에 떨어지느냐에 따라 처지가 달라진다.기피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낭만적 피사체가 되기도 한다. 사람도 그렇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함께 있는 게 불편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 되기도 한다.
아직 설익어 냄새를 좀 풍긴다 하더라도 그 냄새조차 익어가는 중이라 양해 받을 수 있는 낭만적 사람들과 함께라면 비록 혹독한 겨울 같은 삶을 살아가더라도 조금은 느긋할 수 있겠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다. 지나간 1년의 하루하루는 떨어진 은행열매와 비슷하다. 지나간 그 하루하루는 어떻게 사용하였느냐에 따라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날로 기억될 수도 있고, 아니면 소중하고 낭만적이었던 날로 기억될 수도 있다.
어떤 날들이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면 함께했던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된다. 비록 설익어 좌충우돌했던 날이었더라도 이를 받아들여주고 다독여줄 수 있는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최소한 기피의 날은 아니라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얼마 남지 않은 12월의 하루하루는 부디 따뜻하기를 바란다.함께 하는 사람들과 조금은 느긋하게 이 세상을 낭만적 피사체로 바라볼 수 있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