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승아 칼럼위원(아동문학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요즘 학술대회는 코로나 이후 온라인으로 열리고 있다. 온라인으로 운영되다 보니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아서 좋은 점도 있다. 한 손으로 들 만큼 작은 컴퓨터가 삶을 매우 편하게 만들어 주어서인지 전혀 낯설지 않고 금세 적응한다.
기상 정보를 확인하거나 주간 및 월간 계획표를 세우고 수정하는 데에도 손 안의 컴퓨터를 이용한다. 나날이 나 자신의 진화 속도가 빠른 것을 실감하면서 문명에 길들여진 모습을 느낀다. 그러고 보니 꽤 오래 경험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스마트폰의 존재가 사람들의 일상을 바꿔 놓으리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던가 싶다.
최근 방문했던 학술대회에서는 chat GPT로 학습자들의 글을 평가하는 주제로 토론이 이루어졌다. 특히 성인 외국인 학습자들이 한글을 배우면서 쓴 글을 평가하는 데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자부하였다.
과연 인간의 능력으로 이루어낸 성과인지, 기계의 능력을 찬미하는 것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당혹스러웠다. 평가 도구가 인간의 발명품이기는 하지만, 인간이 기계에 너무 의존하는 경향을 보여서 의아한 것이다.
전혀 동의하지 않는 관점은 아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수십, 수백 명의 글을 평가하는데 많은 시간이 할애되고 몸도 지쳐 똑똑한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는 것이 나쁘지는 않으므로.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 그보다 더 좋은 비서는 보기 드물기 때문이다. 똑같은 질의 평가를 개별 학습자들에게 공평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얼마나 좋은 비책인가.
그러나 연구가 계속되면서 빅데이터의 양적 한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입말과 글말의 차이를 혼동하여 정확성을 말하기 어려워지자, 앞으로는 유창성을 평가하겠다는 의견을 내기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의 개성까지도 로봇이 평가하겠다는 의도인가 말이다. 이 무슨 해괴한 말인지 연구의 목적과 방향을 가늠할 수 없었다.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를 일컬어 ‘MZ세대’라고 한다. 1980년부터 1990년 초까지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이들이다. 40여 년 동안의 성장기 세대들은 정보기술(IT)에 능숙한 세대들이어서 컴퓨터를 다루는 정도에서 더 나아가 스마트폰의 활용과 동영상 제작에 관심을 갖는다.
과거의 독서 습관으로 지식을 쌓지 않다 보니 글 읽는 방법조차 다르다. 과거의 세대가 종이책의 글을 평면적으로 읽었다면, Z세대는 동영상 같은 복합 미디어를 입체적으로 읽는다.
입체적 읽기는 소리, 음악, 자막, 영상 등의 많은 요소들을 동시에 지각하는 방법이다. 때문에 과거의 교육방식으로는 세대들이 학습하기 어려워졌다. 과거의 방식으로 이들을 지도하면서 미래지향적 신인류를 그려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금 우리는 산 좋고 물 맑은 경관 좋은 곳에서 휴양하는 여가생활 대신, 도시의 맛집이나 빽빽한 빌딩숲 사이에서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여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게시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산다. 개인적 이익을 취하려는 것 같아도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을 기록하되 정보로 공유하는 일은 이타적인 행동이다. 하루하루 보고 듣는 소식이 절대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정보로 인식한 관점이 어찌 보면 신선하다.
맛집에 대한 정보를 글말로 쓰면 독자가 상상력으로 맞추어 이해한다. 반면에 같은 정보를 영상으로 찍어 실시간 Social Network Service(SNS)에 게시하면 독자들이 즉시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 후자는, 독자의 입장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한 배려이다.
그러므로 Z세대들에게 복합매체 양식은 개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함께 느끼고 함께 반응하는 과정을 통해 교류의 경험을 하게 된다.
누구나 일상 속에서 흔히 ‘오늘 점심 뭐 먹지?’, ‘오늘 저녁 뭐 먹지?’와 같은 걱정을 한다. 이와 같이 MZ세대들은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를, 공감하는 사람들과 소통하여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스마트폰의 연락처에 입력되어 있는 지인들하고만 전화 통화를 하지 않아도 더 많은 사람들과 빠르게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진다. 다만, 그 소통은 간접적이다. 남의 생각을 단순히 본뜨는 차원이 아니라 내 것으로 바꾸어 재생산하는 솜씨도 발휘한다.
누군가의 경험이 자신에게는 추체험이 되어 예술적 화소(모티프)로 작품을 창조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그렇게 찰나의 생각이 훌륭한 결실을 맺는 과업이 조용히 반복된다. 하루에도 수많은 생각을 하고 사는 개인의 삶은 치밀하게 기록되고 소통됨으로써 의미를 갖는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 것, 내 방식에 자부하는 가치관이야말로 디지털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조건이 아닐까.
일상을 기록하고 공동체 안에서 소통하게 되면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성찰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인터넷의 소통 환경도 수평적인 관계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때문에 생각에 오류가 있으면 빨리 수정된다. 다만, 개인의 의견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강하게 전파된다.
인터넷상에서 설득력 있는 논리는 실물 근거의 힘에 의해서랄까. 어떤 미사여구도, 어떤 그림이나 사진도 정지된 상태일 뿐 작동하는 영상 메시지보다 효과적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가까운 과거에는 유행에 민감했던 세대도 있었다. 그러나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생활을 영위하며 가치를 창조하는 데에는 유행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인터넷상에서는 자신이 타인의 생각에 공감하기보다 자신의 생각을 타인이 공감하는 쪽에 흥미를 갖게 된다. 글을 게시하고 나서 댓글이 얼마나 되는지, 댓글의 성격이 어떠한지에 민감해진다.
개인이 생산한 정보에 반응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은 가치를 평가하는 의미를 나타낸다. 평가를 받는 입장은 자부심과 수치감으로 나뉘어 양극단의 결과를 두고 긴장하게 만든다.
주체로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이 진정 이로운 결과로 판명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소통의 민감성으로 인해 긴장관계로 독자를 만나는 것만큼 두려운 일이 또 있을까. 관계를 확장하고 영향력을 증명하는 경험이 보장되려면 디지털 소통 시대에 필요한 예절도 공유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