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국민서관(주) 콘텐츠기획본부장
인간은 태생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제한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배타적인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주변의 모든 것들이 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장을 하면서 더 큰 문제는 주변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걸 자각하게 된다.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근원적인 악을 제거하지 못하는 한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경험적으로 인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인이 되면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된다.주변을 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자신의 둘레에 높다란 장벽을 친다.장벽을 건드리는 모든 것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발톱을 세운다.털을 곧추세우고 으르렁거리며 끊임없이 장벽을 보수하고 높인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장벽의 안쪽에서 스멀스멀 생겨나는 적을 놓치기 일쑤다.장벽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내면적이고 심리적이며 태생적인 악이 성장을 거듭하여 어느새 적이 되어 자신을 공격한다.장벽의 안에서 일어난 일이니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쌓아올린 장벽은 그야말로 무용지물이 된다.
급속도로 무너진 자아는 커다란 충격에 빠지고 고통에 몸부림을 친다.시간이 약이라는 말도 이 경우엔 소용이 없다.시간은 충격을 조금씩 흡수하고 고통을 무디게 만들지만 필연적으로 망각이라는 부작용을 동반하기 때문이다.망각으로 기억을 잃은 자아는 다시 또 장벽을 쌓아올린다.
조금 더 높이, 조금 더 튼튼하게 쌓아올린다.부서지면 쌓고, 무너지면 쌓고를 끊임없이 반복된다.남는 건 결국 피폐해진 자아뿐이다.지금 당장 허물어야 한다.자신의 둘러싼 모든 것들에서 내면을 꺼내야 한다.그 안에 존재하는 근원적인 악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악이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그럴 때 비로소 제거가 가능해진다.주변은 허상에 불과할 뿐이다.허상에 취해 자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악은 주변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존재한다.석양이 붉은 건 누가 비추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불게 타오르기 때문이다.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을 때도 석양은 언제나 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