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제7대 왕인 타르퀴니우스를 마지막으로 왕정이 끝났다. 그리고 기원전 509년에 로마 공화국이 탄생하는데 이에 얽힌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역사가 리비우스는 공화정 시대에 접어든 로마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앞으로 로마는 해마다 선거를 통해 뽑히는 자들에 의해 다스려지고, 개인보다는 법이 지배하는 국가가 되었다”라고.
왕정 타도로 끌고 간 공로자는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라는 사람이다. 그의 어머니는 추방된 마지막 왕인 타르퀴니우스의 누이니까, 왕과 브루투스는 외숙부와 생질의 관계다. 브루투스라는 성도 원래 조상한테서 물려받은 성이 아니라, 바보를 뜻하는 말에서 생겨난 별명이다.
그는 ‘바보’로 멸시당하면서 제멋대로 전횡을 휘두른 타르퀴니우스 시대를 참고 견디며 은인자중해 왔다고 한다. 그 별명이 결국에는 성이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바보 취급을 받아도 왕의 조카인 이상 그는 권력 주변에 있게 마련이고, 모든 것을 냉정하게 관찰할 기회가 많았을 게 분명하다. 또한 정보도 풍부했을 것이다.
그런 브루투스였기에, 이제 로마는 비록 효율적이기는 하나 왕이라는 한 개인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제도는 버려도 될 만큼 성장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타르퀴니우스는 부인과 공모해 자신의 장인이기도 한 선왕 세르비우스를 암살한다. 뿐만 아니라 세르비우스의 장례를 금지했다. 그리고 선왕파로 알려진 원로원 의원들을 모조리 죽였다.
무장한 호위병에 둘러싸이지 않곤 밖에도 나가지 않은 그는 민회에서의 선거도 원로원의 승인 절차도 거치지 않고 왕위에 올랐다.
그 후에도 줄곧 원로원에 조언을 청하지지도 않았고, 민회에 찬반을 묻지도 않았다. 이런 폭정에 로마인의 마음속에 맺혀 있던 타르퀴니우스에 대한 불만이 마침내 폭발했다.
브루투스의 제안에 커다란 함성으로 찬성의 뜻을 표한 민중은 민병대를 결성하자는 브루투스의 호소에도 열렬히 응했다.
이때 쯤 아르데아의 전쟁터에 나가 있던 타르퀴니우스도 변고를 알았다. 왕은 당장 휘하 부대만 이끌고 로마로 돌아왔다.
성문은 굳게 닫힌 채 열리지 않았다. 추방하기로 결정됐다는 통고를 받았을 뿐이다. 그렇지만 250년 동안 익숙해진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이행하는 것은 역시 대변혁이었다.
변혁기에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잇따라 일어난다. 변혁이 또 다른 변혁을 부르기 때문이다.
로마 공화국도 이 역사의 관례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공화정이 되면서 원로원이 되기 위해서는 집안의 가부장이 죽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젊은이들이 왕정복고를 결의한 것이다. 각자가 피로 서명한 서약서까지 만들었다. 그런데 음모에 가담한 자들은 밀고자에 의해 들통이 나고 당장 체포되었는데, 이 들 중에는 집정관 브루투스의 두 아들도 포함돼 있었다.
당장 민회가 열리고 국가 반역죄로 고발됐다. 묵묵히 지켜보고 있던 민중 가운데 몇 명이 브루투스의 속마음을 읽었는지 추방형에 처할 것을 제안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형이 아니라 추방형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브루투스는 집정관으로서가 아니라 자식에 대한 생살여탈권까지 인정받고 있는 로마 가문의 가부장으로서 행동했다. 브루투스는 피고석에 서 있는 두 아들에게 말했다. “티투스! 티베리우스! 네놈들은 왜 너희들에 대한 고발에 대해 자신을 지키려 하지 않느냐?” 두 아들은 묵묵부답이었다.
아버지의 질문이 세 번 되풀이 되었지만 대답이 없었다. 브루투스는 경비병들에게 말했다. “앞으로의 일은 그대들 몫이다.” 형 집행은 그 자리에서 당장 이루어지게 됐다. 우선 주모자라는 이유로 브루투스 두 아들의 옷을 벗기고 두 손을 뒤로 결박당한 채 채찍질이 시작됐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이 잔혹한 광경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직 브루투스만이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쓰러질 때까지 채찍질을 당한 두 젊은이는 한 사람씩 끌려가서 참수형을 당했다. 거기까지 입회한 뒤에야 비로소 아버지는 자리를 떴다.
그리고 브루투스는 왕정탈환을 위해 에트루리아 지방의 여러 도시에서 병력을 빌려온 타르퀴니우스에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죽는다.
이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2,500여년 전 로마의 역사이다. 그 들은 이런 뼈아픈 과정을 치루고 직접 민주주의를 이루어 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최소한의 민주주의를 위한 자신의 참정권마저도 행사하지 않으면서 민주주의를 부르짖는다면 어느 위정자가 국민의 함성에 귀를 바로 세울 것인가!
참된 민주주의는 국민이 투표로써 정치인을 심판할 때 바로 설 수 있다고 본다.
파주시선거관리위원회
김계호 홍보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