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숙
논설위원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곳, 소위 절대 권력이 군림하는 집단은 서서히 마비된다. 이성과 지혜를 가진 영물인 인간을 네 발 달린 짐승으로 전락시키는 정치가 바로 독재다.
매일 발밑에 찰랑거리던 정치, 외교 먹이사슬이 이제는 가슴을 넘어 목까지 치닫는 자발적 복종의 시대로 전락하는 것을 느낀다. 민주와 자유의 탈을 쓴 치밀한 독재적 운영의 틀에선 바른 말하는 사람이 냇물을 흐리는 미꾸라지 취급을 받는다.
민주주의 틀의 핵심은 힘의 균형이다. 균형을 잃으면 자신이 휘두르는 힘에 걸려 넘어지는 게 순리이고 이치이다. 민주주의는 한 국가를 작동시킬 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집단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원칙인 것이다.
원칙을 잃는 집단은 판단력을 잃고 끝내는 좌초한다. 우리는 무엇이든 세계 최고의 수준에 목숨을 거는 민족이다. 여야 불문하고 광화문 대 서초동, 서초동 대 광화문의 인파 수치는 조작의 극에 달했다. 작은 나라라는 본질적인 정체성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우리에게 촛불집회는 많은 것을 걸게 했고 잃게 했다.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인한 촛불집회에서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사과와 반성, 퇴진을 요구했다. 특정 정치인을 대안으로 내세우지도 않았고 특정 정당이 나설 수도 없었다. 정치적 이념을 뛰어넘어 국민의 상식선에서 변화를 요구하는 촛불이었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촛불을 들 수 있었다. 그러나 서초동 촛불집회는 달랐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임명과 장관직 수행에는 반대하지만, 검찰 개혁에 찬성하는 많은 국민들이 서초동 촛불을 들 수 없었다. 판단력을 잃은 여야 인파 구걸에 편이 갈렸다. 같은 정파를 지지하는 사람들만이 촛불을 들었다.
무능 독선 아집에 항거하는 인파가 전국에서 광화문으로, 검찰개혁과 조국 전 법무장관을 지키겠다는 인파가 전국에서 서초동으로 몰려들었다, 조국 전 장관은 강경화 외교부장관,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 송영무 전 국방부장관처럼 국회인사청문회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대통령의 임명 강행으로 장관이 됐다.
문재인 정부에서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한 장관은 현재 22명이다. 이명박 정부 17명, 박근혜 정부 10명, 노무현 정부 3명에 비하면, 이것 또한 세계적인 인정을 받으려 했나 싶다. 조 전 장관은 10월 14일 결국 사퇴했다.
2019년 11월 11일 오후 4시 26분, “조국, 정경심 구속 기소 후, 송구… 재판 통해 책임 가려질 것”이라는 헤드라인이 인터넷 상에 올라왔다. 조국을 처음부터 임명하지 않았으면 그만이었다.
문 대통령은 민주주의 정체성에 혼란을 야기했다. 정권의 핵심가치인 정의 평등 공정한 사회도 위태롭게 됐다.
일각에선 국민의 판단력을 와해하는 정치 실종이 서초동 촛불을 촉발시켰으며 국민 분열에 한몫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앞으로 국정 운영의 핵을 어디에서 찾을지 불안하기만 하다. 국가는 작은 집단들의 집합체이다. 집단을 이끌어 가려면 올바름이라는 가장 정교한 판단력을 갖추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