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순 칼럼위원(前 임진초등학교 교장)
6월은 6.25라는 생과 사를 가름한 전쟁으로 한 맺힌 아픔의 달이고, 7월은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된 날로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을 기억하는 달이다. 8월은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완전한 자유를 찾은 광복의 달이다.
이 석 달 안에 자유 대한민국의 생존의 역사가 함축되어 있다. 한바탕 폭우가 퍼붓다가 폭염이 극성을 부리고, 태풍이 몰아치는 계절이 반복되어도 우리는 모든 시련을 이겨낸다.
1952년 한반도는 공산 침략자들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전쟁터였고, 같은 시기 미국의 한 잡지사 라이프(Life)는 무더위를 이겨낼 묘안을 찾고 있었다.
당시 한물간 작가로 평가받는 분의 원고를 유명 작가와 평론가들의 서평을 받아 소개하는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
의뢰 작가 명단에는 종군기자로 참전하고 있던 ‘제임스 미치너’도 있었다. 한국의 어은 전쟁터에서 원고를 받은 미치너는 해병대 초소 불빛에 의지하여 책을 읽고 서평을 보냈다.
84일간 물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산티아고가 85일째 되던 날 700kg이 넘는 청새치를 낚고 3일간의 사투 청새치를 배에 매달고 항구로 향한다.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가 청새치의 살점을 모두 뜯어먹어 뼈만 남은 청새치를 끌고 돌아오는 (老) 어부의 이갸기이다. 작가는 “사람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파멸당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이다.
미치너의 서평에 힘을 얻은 라이프(Life)는 「노인과 바다」 원고를 잡지에 소개하자 이틀 만에 500만 부 넘게 팔리는 기적이 일어난다. 그 기적은 태풍이 되어 헤밍웨이는 1953년 퓰리처상을 받고, 1954년에는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사람 중에는 ‘전쟁터에서 읽을 책(冊)을 쓰는 사람, 그 책(冊)을 전장에서도 읽는 사람, 그 책(册)을 전쟁터 같은 삶의 현장에서 읽고 의지를 새롭게 다지는 사람’이 있다.
「노인과 바다」의 원고를 미치너가 한국 전쟁터에서 읽고, 헤밍웨이는 작가의 명성을 회복했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인연인가? 초소의 희미한 등불이던 대한민국은 세계를 밝히는 번영의 빛으로 바뀌었다. 6.25가 헤밍웨로 연결되는 인연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한 초연결의 사람 이야기이다.
지난 한 달 대한민국은 인권을 유린한 갑질 사안을 놓고 패싸움을 한 또 다른 전쟁터였다. 말도 안 되는 변명과 옹호하는 집단들을 목도하며 500여 년 간 같은 민족을 노예로 부린 그 치욕의 장면이 되살아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안중근 의사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고 경고했다. 상어가 다 뜯어 먹어 뼈만 남은 청새치의 가시가 아니라 우리 각자 입에서 나오는 가시 돋친 말을 삼가하라는 유훈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폭염에도 ‘절대로 무너질 수 없는 인간 한계’를 극복한 「노인과 바다」 이야기를 읽으며 광복의 8월에는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는 아름다운 인연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