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국민서관(주) 콘텐츠기획본부장
예전에 비해 눈에 띄게 송충이가 사라진 이유는 살충제를 많이 뿌렸기 때문이고,
올해 유독 과실수(果實樹)들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는
꽃들의 수정을 도울 벌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니,
벌들이 사라진 이유는 송충이가 사라진 이유와 같을 거라고 추측 된다.
결국, 살충을 위한 노력이 과실(果實)이 달리지 않는 과실수를 만드는
과실(過失)을 초래하고 말았다고 할 수 있겠다.
살충제는 해충과 익충을 구분하지 못하니 살충제를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책임은 해충과 익충을 구분하려 드는 사람들의 몫이고,
직접적인 피해자는 애당초 해충과 익충의 구분이 따로 없는 곤충들이며,
간접적인 피해자는 꽃은 피우나 과실을 맺지 못하는 과실수이며,
가해자는 굳이 밝히지 않아도 명백하다.
억울 할만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벌들은 오늘도 최선의 하루를 살아낸다.
힘들겠지만 과실수는 그들의 노력 덕분에 몇 개라도 열매를 맺을 것이지만,
열매의 수확량이 적다고 투덜대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가해자이다.
세상의 대충 이렇게 흘러간다.
선악의 구분이 가끔은 우습게 생각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과실(過失)이라는 표현도 좀 겸연쩍다.
부주의나 태만 따위에서 비롯된 잘못이나 허물 또는 어떤 결과의 발생을
미리 내다보지 못한 일이라고 하기엔 살충제의 과다한 살포에 의한
폐해가 너무도 선명하고 명백하기 때문이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이 있다.
너무나 많은 과실을 저질렀지만 그렇다고 후회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넋 놓고 있을 시간도 부족하다.
벌들이 모두 사라지고 과실수들이 더 이상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날이 온다면
그 때는 인간도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이 가장 빠른 때이다.
선과 악을 구분하는 일은 나중으로 밀어도 된다.
우선은 살아남을 일이다.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벌을 만났다.
마음을 다해 응원해주었다.
힘내라 벌.
Cheer up, b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