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국민서관(주) 콘텐츠기획본부장
그리스어 원문에는 단지나 항아리가 ‘피토스’라고 쓰여 있다고 한다.
그런데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인문학자인
에라스무스가 판도라 이야기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피토스’를 ‘픽시스(상자)’로 옮기면서 상자가 되었다.
이후 판도라의 이야기를 <판도라의 상자>라는
관용구로 세상 사람들이 사용하게 되었다.
빛나는 오역의 산물인 셈이다.
<판도라의 항아리>라고 한다면 이제는 왠지 어색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연말이나 연초의 모임들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지만 온라인의 눈부신 발전으로 인해
이야기 자체가 줄어들지는 않았다.
과거에 함께했던 이야기.
현재를 살아가는 이야기.
미래에 이루어갈 이야기.
등등
비대면의 세상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하지만 해석은 각기 다를 수 있다.
해석은 지극히 주관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오역을 하더라도 상관없다.
단지든 항아리든 상자든 그 안에 든 제우스의 음험한 계략과
치명적인 유혹과 판도라의 위험한 호기심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오역일지라도 빛이 날 수 있기를 원할 뿐이다.
다시 시작된 새해에는 비록 형식적인 부분은
오역을 하더라도 전하고자 하는 뜻만은 명확히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빛이 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와 당신과 그리고 우리 모두가 다 빛나는 한해가 되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