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국민서관(주) 콘텐츠기획본부장
앨범을 뒤적이다 보면 쓰고 싶었던 글에 잘 맞는 사진을 발견할 때가 있고,
사진을 찍어보니 괜스레 무슨 글인가 쓰고 싶어져 이 생각 저 생각을 끄적거릴 때도 있다.
수량을 조절하는 농수로의 작은 수문 너머로 붉게 물든
여명의 하늘을 찍어보니 꽤 괜찮은 느낌의 사진이 되었다.
'무슨 글을 써볼까?'
이리저리 궁리를 해봐도 별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냥 그대로도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땐 그냥 사진만 바라보는 일도 괜찮고,
떠오르지 않는 생각을 잡기 위해 억지로 머리를 쥐어짜지 않아도 괜찮다.
별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건, 사진 속 하늘이 내게 주려고 했던 게
감동이 아니라 휴식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숨 막히게 바삐 돌아갈 하루를 위해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 있는 사진도 괜찮다 싶었다.
또한, 숨 막히게 돌아가는 일상 중에 잠시 짬을 내어
들여다볼 수 있는 그런 사진도 괜찮다 싶었다.
그리하여, 농수로의 작은 수문 너머로 보이는 붉게 물든
여명의 하늘 사진에 굳이 제목을 붙이자면 '휴식 같은 사진'이 되겠다.
벅찬 일상에 지쳐 숨고르기가 필요할 때 다시 한 번 꺼내볼 사진이니,
'휴식이 되는 사진'이라는 제목도 괜찮겠다 싶다.
어느새 연말이다.
돌이켜보면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때때로 흔들리기도 했던 시간들이다.
흔들릴 때마다 나를 잡아주고 지탱해주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던 사진 한 장이나 억지로 머리를 쥐어짜지 않아도
좋을 글 한 줄이 주는 휴식이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흔들리는 일상을 지탱해주는 건 흔들리지 않을 휴식인지도 모르겠다.
잠시 숨을 골라도 좋을 연말이다.
이럴 땐 사진이나 그림 또는 책 한 권 읽는 일도 꽤 괜찮은 휴식이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