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국민서관(주) 콘텐츠기획본부장
사실 그랬다.
머리끝이 근질거리고 붉은빛이 감돌 때까지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사실 멋스럽다고까지 생각했었다.
근질거림은 점차 줄어들었지만 붉은빛은 어느새 짙어지고 넓어졌다.
그런 내 모습을 볼 때면 모두들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이야~~~ 색이 참 멋지게도 들었네. 불타오르는 것 같구먼.”
덩달아 신이 났었다.
모두에게 칭송받는 그런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하루가 다르게 힘이 빠져나갔지만
늘어나는 감탄사가 싫지 않던 나날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바람 한 줄에 그민 툭 떨어지고 말았다.
벤치에 앉아 따스한 햇볕을 쬐고 싶었지만 쇠약해진 몸은
아주 작은 바람에도 이리저리 바닥을 뒹굴게 되었다.
정신마저 가물거리던 그 때 익숙한 감탄사가 들려왔다.
“이야~~~ 색이 참 멋지게도 들었네. 불타오르는 것 같구먼.”
‘잊지 않았구나. 아직도 여전히 나를 좋아해주는구나.’
힘겹게 눈을 뜨고 보니 살펴보니 아직 떨어지지 않은
친구들을 향한 감탄사였다.
흐릿한 웃음이 나왔다.
감탄사 한 번 들을 수 없었지만 새파랗게 기운이 넘치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웃음이 나왔다.
기억이 점점 흐릿해졌다.
그 때, 바람 한 줄이 바닥을 타고 불었다.
두둥실 떠올랐다.
바람에 실려 그렇게 어딘가로 향했다.
근질거리던 머리가 언제부터인가 괜찮아졌다.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거울에 비친 귀밑머리가 어느새 희끗희끗하다.
머리를 들춰보니 여기저기 흰머리다.
‘어느새 이렇게 되었구나.’
흐릿한 웃음이 나왔다.
마음 한 편에서 바람이 일었다.
바람에 실려 어디론가 날려간 붉은 단풍잎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이 계절은 흐릿한 웃음과 많이 닮았다.
가을,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