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국민서관(주) 콘텐츠기획본부장
‘태어나서부터 성장하는 모든 과정들이 흔적을 남기기 위한 행위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면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 참 열심히도 살아간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생각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이른바 ‘흔적 남기기’라 정의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와는 다르게 살고 있는 사람을 간혹 만나게 될 때면
애써 정의한 생각에 혼란이 찾아오곤 한다.
살아오는 동안 남긴 자신이 남겼던 흔적들을 하나 둘 지우며
살아가는 이에게 이유를 물으니 이렇게 대답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이들의 흔적으로 이 세상을 가득 채울 수는 없지 않겠소.
새로운 흔적들이 새겨질 공간은 만들어줘야죠."
그 사람의 말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아마도 ‘흔적 지우기’이라 할 수 있겠다.
언젠가는 누구라도 자신이 남긴 흔적에 대한 정리가 필요할 순간이 반드시 올 것이다.
누군가는 흔적 남기기를 선택할 것이고, 어느 누군가는 흔적 지우기를 선택할 테지만
그 선택은 어느 누구라도 간섭할 수 없는 오로지 개개인 각자의 몫이 아닐런지.
가을이 어느새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하늘을 가득 채울 듯 풍성하게 물들었던 단풍은 이제 나무에서 떨어져 바닥을 물들이고 있다.
그 단풍의 바다 위를 걸었지만 단 하나의 흔적도 남지 않았다.
남긴 흔적이 없으니 지울 흔적도 없는 단풍의 바다다.
멀지 않은 미래의 어느 날 내게도 선택의 순간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남길 것이냐? 아니면 지울 것이냐?
그 선택의 순간에 단풍의 바다를 떠올릴 수 있다면 아마도 고민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순간순간을 풍성하게 물들이지만 결코 집착하지 않는 삶의 태도’
이 가을의 단풍바다가 전하는 메시지가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