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국민서관(주) 콘텐츠기획본부장
꽃이 아름다운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만고불변의 진리와 같다.
꽃을 피우는 대부분의 식물은 봄과 여름에 꽃잎을 틔우지만
드물게는 가을에 꽃잎을 틔우기도 한다.
그러니까 길어야 가을까지가 꽃의 계절이라는 얘기다.
그리하여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의 초입까지도 꽃의 화려함에 취해 지냈다.
줄기와 잎은 꽃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는 조력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오로지 꽃의 아름다움을 맹목적(盲目的)으로 믿으며
세 개의 계절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네 번째 계절이 성큼 다가왔다.
꽃이 아름다운 건 맞지만,
꽃은 이미 시들었고, 이미 모든 아름다움을 떨구었다고 믿었다.
제법 깊어진 가을이 본격적으로 색을 입기 시작했다.
꽃의 화려함이 사라진 자리를 추색(秋色)의 너울거림이 가득 채웠다.
꽃이 아름다웠던 건 맞지만,
꽃이 사라진 자리 또한 여전히 아름답다.
줄기도, 잎도 저만의 색으로 꽃이 되었으니
이는 맹목(盲目)의 역설(逆說)이라 할 수 있겠다.
네 번째 계절은 눈이 내릴 것이다.
세상이 하얗게 내린 눈 속에 감추어졌다고 생각될 때도,
적절한 분별이나 판단 만큼은 결코 흐려지지 않기를 바란다.
꽃이 없는 자리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맹목적(盲目的) 믿음은
역설(逆說)적이게도 이미 지고 사라진 꽃이 준 선물이다.
보기에 따라 세상 모든 게 다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