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국민서관(주) 콘텐츠기획본부장
농사를 짓는데 꼭 필요한 네 가지 요소가 있다고 한다.
토지, 씨앗, 햇빛, 물이다.
이 네 가지 요소 중 한 가지라도 빠지면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다.
이토록 중요한 이 네 가지 요소의 공통점은 인간의 노력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들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네 가지 요소는 모두 자연이 우리에게
잠시 빌려준 것이자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빌린다는 것은 사용 후 반드시
돌려주어야 한다는 약속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니 빌린 것을 망가뜨려서도 안 되고, 마치 원래부터 제 것인냥
흥청망청 낭비를 해서도 안 된다는 얘기다.
농사에 꼭 필요한 네 가지 요소도 마찬가지다.
자연에게서 잠시 빌려서 사용하고 있는 토지와 씨앗과 햇빛과 물은
사용 후에 다시 자연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것들이다.
그러니 결코 망가뜨려서도 안 되고, 흥청망청 낭비를 해서도 안된다.
아직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도 되기 전인데 때 이른 코스모스가 벌써 피었다.
성질 급한 이 코스모스는 아마도 자연에게서 토지와
햇빛과 물을 가불하여 사용한 듯 하다.
세상이 많이도 궁금했던 모양이다.
바람의 흐름에 따라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면서 세상 구경에 여념이 없다.
조금 일찍 피어나긴 했지만 더 많이
사용하지도 그렇다고 흥청망청 낭비하지도 않다.
가을이 익어갈 무렵이 되면 흙이 되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것이 바로 코스모스의 삶이다.
세상을 살다가 다시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우리들 모습과 한 치도 다름이 없다.
망가뜨리지 말고, 흥청망청 낭비하지도 말고,
주어지는 만큼 살다가 돌아가면 그만이다.
다시 토지가 되고, 씨앗이 되고, 햇빛이 되고,
물이 되는 그날까지 그렇게 살다가 가면 그만이다.
잠시 빌려 쓰던 모든 것들을 돌려주고 훌쩍 떠나면 그만이다.
반드시 돌려주어야 한다는 약속을 지키는 일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코스모스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