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순 칼럼위원(前 임진초등학교 교장)
마지막 잎새처럼 달력이 한 장 남았다. 12월은 1년을 결산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달이다. 시인 나태주는 “당신의 콧노래와 나지막한 목소리를 들으면 한 아름 바다가 온다”고 노래한다. 기쁨 가득한 이야기이다. 살고 싶고, 살리고 싶고, 신명 나게 사는 꿈 너머 꿈을 꾸는 노랫말이 힘이 된다.
어느 해 어느 달이든 매일 맞이하는 ‘오늘’은 아무도 살아보지 않은 모든 인생의 첫날이다. 특히 자유대한민국에서 ‘오늘 아침’ 눈을 뜬 사람은 기가 막히게 운이 좋은 사람이다. ‘오늘’은 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의 삶이 조금 더 나아지게 만들 기회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말부터 1월 한 달간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한 말의 결산을 해야 한다. 자신이 날마다 한 그 “복 많이”가 ‘진짜 복’이 되는 말이었는지 반드시 돌아봐야 한다.
자녀들에게 꼭 해야 할 말을 했나? 안 해도 될 말을 했나?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고통을 주는 말은 하지 않았나? 비난과 비교로 숨 막히게 하지 않았나?
전 세계 아동 대상으로 “너는 와 공부를 하니?”라는 물음에 “엄마에게 혼날까봐”라고 대답을 한다고 한다. 공부 잘하는 아이도 중요하지만 ‘말씨’가 진실하고 정직하고 아름다운 자녀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이다.
나무는 나이테 자랑하지 않고 생명 자체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 1년생 나무와 10년, 100년, 천년 수의 차이는 얼마나 아낌없이 주느냐의 차이이다.
사람은 나무가 배우지 않은 ‘말을 가진 존재’이다. 소년과 70대 어른의 말은 품격이 비교 불가하다. 부모와 자녀의 언어 수준이 다르고, 평범한 시민의 말과 국회의원의 말은 달라야 한다.
삶의 시간과 하는 일과 배움의 차이는 말의 수준이고 인격이고 품위이고 삶의 향기이다. 이순(耳順)을 지나 지천명(知天命)에 이른 어르신의 말 한마디는 천금과 바꿀 수 없다. 삶의 지혜에서 길어낸 심금을 울리고 마음에 평안을 주는 영혼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은 엄마·아빠나 이웃 어른들처럼 말하며 살고 싶을까? 우리 가정과 학교와 사회와 나라는 “가는 말이 곱고 오는 말이 더 고운” 나라일까?
지난 한 해 씨줄과 날 줄을 엮은 신문과 방송과 인터넷을 수놓은 말들의 실상은 참담하다. ‘이번 생은 망했다?’, ‘생지옥’ “세상이 두려워요, 은둔 청년 51만 명” “가출 청소년 15만 명”. OECD 국가 중 자살률 부동의 1위, 학교폭력, 가정 폭력, 데이트 폭력, 딥페이크, 우울증과 공황장애, 사기, 물가 불안, 취업불안, 실직 등 희망과 용기를 주는 말은 찾아보기 어렵다.
특권지역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쏟아낸 말들을 아이들이 들을까? 배울까? 따라할까? 겁나고 조마조마한 말들이다. 하루도 쉬지 않는다. 우리 앞선 세대들이 들었다면 매일 귀를 씻었을 것이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말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지 않는 나라와 민족은 없다. 모든 종교의 핵심 가르침과 삶의 기본을 말의 중요성에 두고 특별하게 강조한다.
철학자 로버트 노직은 「무엇이 가치있는 삶인가?」”라는 책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아테네 법정에서 시민들에게 마지막 질문을 한다.
“아테네(대한민국) 시민들이여 오로지 돈을 벌고 명성과 위신을 높이는데 매달리면서 지혜와 진리와 영혼의 향상에는 조금도 생각과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 부끄럽지 않습니까” “성찰하지 않는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며 “너 자신을 알라”라는 질문을 한다. 우리는 그 질문에 답할 준비가 되었나?
마르셀 푸르스트는 “진정한 항해의 목적은 새로운 땅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라고 한다. 단 한 번 사는 인생의 진정한 목적은 사람을 존중하고 사람답게 사는 것이다.
빠삐용은 “오늘의 불행은 지난날 내가 잘못 말한 날의 보복이다. 시간을 낭비한 죄”라고 독백을 한다. ‘할 말 다 하고 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뜻이다.
다행인 것은 나라 안에서는 피 터지게 싸운 지난해 한국행 이민자 증가율이 50.9%로 OECD 기준 세계 2위였다. 이민자 증가 속도는 영국과 동등하다. 외국인 입국자 수가 한국인 출국자 수보다 12만 명 많았다. 한국이 ‘가서 살고 싶은 나라’임을 보여주는 통계들이다.
소셜미디어에 밤늦게 한강 변을 거니는 젊은 여성이 “여기는 안전한 한국”이란 글을 올리고, 소매치기에 시달린 유럽인들은 휴대전화로 자리 맡는 한국의 카페 풍경에 감탄한다. 컴퓨터나 백도 안 가져간다.
수준 높은 의료 기술, 편리한 금융과 쾌적한 대중교통, 깨끗한 화장실도 찬사를 한다. “한국은 모든 게 선진국”이라고 칭찬한다. 국내 외국인 거주 비율이 4.89%로 252만 5천여 명이다.
이 나라는 우리의 땀과 눈물과 헌신적인 노력으로 만들었다. 오늘부터 비하하고 낮추던 나쁜 근성 내려놓고 사랑과 존중의 희망 가득한 말을 하자. ‘오늘을 함께 살 수 있어 감사합니다’라는. ‘그 말 한마디’ 만으로도 훌륭한 인생이다.
pajusidae@naver.com